코로나 이후로 시행연기 제안도 거부
기업인 막무가내 국감호출 구태 여전
‘재계 의견에도 귀를 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영진 원내총괄수석부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 |
재계 대표들의 읍소도 소용 없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사실상 문전박대 당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공통공약이였다는 이유로 기업규제를 전례없이 강화한 ‘공정경제 3법’이 입법 문턱에 섰다. 기업 생존이 달린 재계에선 우려와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한 배’를 탔던 여당과 야당 대표는 입법 강행 의지를 거듭 밝혔고, 이들의 기세에 정치권에선 제대로 된 반대 목소리마저 여의치 않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2012년 대선에서 여야의 공통 공약”이라며 “시장경제 발전을 위해서 공정경제라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날 정부가 기습적으로 집단소송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에 대한 반발을 일축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경제계에서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을 옥죈다며 과도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공정경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토대”라고 덧붙였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같은 역차별에 대한 항의에도 귀닫은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법안을 발의할 때 각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만들어 국회에 제출됐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목소리를 들었고, 심사과정에서도 듣겠다지만 허울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정부여당은 경제3법의 속전속결에 이미 나섰다. 전날에는 사전 예고도 없이 증권 분야에 한정됐던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오는 28일 국회에 제출한다고 알렸다.
10년 전 공통 공약이라는게 이유의 전부인 정부여당의 밀어붙이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실증적 근거 제시 없이 쟁점조항들을 속전속결로 통과시키는 일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윤 의원은 “경영계의 걱정을 ‘엄살’로 치부하고, 개정안의 내용을 예전부터 여야가 하던 이야기로 보는 등의 논지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변화하는 경제 상황 속 지금도 이런 주장이 유효하다는 근거가 필수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전통적으로 시장경제 질서를 옹호했던 보수야당에서조차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박용만·손경식 두 경제단체 회장을 최근 만난 김종인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유시장경제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내버려두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로 경제3법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많은 재계 출신, 또 경제 전문가 출신 의원들이 포진된 야당에서조차 반대는 물론, 신중론마저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다.
문제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즉 경제 3법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현재 국회에는 기업경영권 이슈부터 고용·노동제도에 이르기까지 기업 경영과 투자 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기업 부담을 늘리는 법안이 200건 넘게 제출돼 있어 경제계로서는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회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은 논의를 보류하고 근본적인 경제제도 개선 사안은 경제가 정상화된 후에 중장기적으로 다뤘으면 한다”며 시점 재조정이라는 재계의 절박한 배수진도 이날 여당 원내대표의 ‘정기국회 내 처리’ 방침 재확인에 무너졌다.
심지어 추석 연휴 직후 시작될 국정감사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입법부의 주요 의무인 국정감사 법위를 축소하고 이동도 최소화 하고 나섰지만, 주요 기업인들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데는 여야 없이 앞장서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각 국 정부는 시장진입장벽 완화, 파산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경제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이 기업 하나를 두고도 날선 공방을 별치는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정치는 생존 위협에 몰린 기업들을 더 큰 절벽으로 내몰고 있는 모습이다. 최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