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7일 돌연 전원위 상정
긴급상정 유감·표결 의견도 묵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고객이 선물세트를 구매하고 있다. [연합] |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추석기간에 한해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일반적 절차를 무시하고 강행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액을 상향하자는 기획재정부의 이메일 한 통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권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8월20일 내부망 이메일을 통해 권익위에 추석민생 안정대책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다. 한시적으로 전통시장에서 명절선물 구입시 가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권익위는 8월 24일 ‘수용불가’ 입장을 회신했다. 청렴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고, 명절 선물을 더 많이 받으려는 의도로 보여 국민적 비판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또, 한시적 조정이라도 시행령 개정이 필요해 최소 90일이 소요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14일 후 상황은 급반전했다.
권익위는 지난달 7일 곧바로 전원위원회를 열어 가액 상향 안건을 처리했다. 통상 시행령 개정안은 분과위원회를 거쳐 전원위에 상정되지만, 분과위조차 생략한 조치였다. 심지어 전원위에 참여한 여러 심의위원들이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으며, 의견 대립으로 표결을 요구하는 심의위원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긴급 안건으로 상정돼 유감스럽다”, “부정적 선례가 될 수 있다”, “청렴성을 경제 문제에 양보하는 것” 등의 지적이 나왔다. 또, 복수의 심의위원은 “여러 의견이 있으므로 표결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김영란법 위반으로 과태료, 징계, 형사처벌 등을 받은 사람은 총 593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몇 천원, 몇 만원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이영 의원은 “권익위가 그동안 엄격한 원칙과 기준으로 운영되던 청탁금지법을 개정하면서 유례없이 절차와 형식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탁금지법은 국민의 87%가 지지하는 제도”라며 “개정의 명분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도 매우 중요한데, 기재부 이메일 한 통에 권익위가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정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