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시장은 전세매물없고 가격 오르는데
정부 통계는 계약갱신청구건 반영 ‘착시’
전세시장 뾰족한 대책 없어
김상조 실장 “불편하더라도 기다려달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경.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고가아파트 밀집지역의 전셋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성연진 기자] |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최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9월 28일 계약된 84㎡(이하 전용면적)의 전세 계약이 올라왔다. 보증금 18억원으로, 해당 단지 같은 면적의 전세 최고가다. 1년 전만 해도 같은 면적 전셋값은 13억~14억원 수준이었다.
단지 내 상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59㎡도 13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매매도 지난달 20일 135㎡이 42억5000만원 역대 최고가에 팔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와 매매 모두, ‘넘을 수 없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단지는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집값 하락의 예를 든 ‘반포 자이’와 반포동 랜드마크를 이루는 단지로, 강남권 아파트 가격 향방에 지표가 되는 곳 중 하나다.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밝힌 “매매 시장은 안정화되고 있으며 전셋값 상승은 저금리에 따른 것일 뿐 전세 거래량은 늘고 있다”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는 흐름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2일 저녁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월과 7월, 8월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서 매매 시장의 안정세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다만 전세시장에서 과도기적 불안정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정부의 시장을 바라보는 안이한 인식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앞서 지난달 말 홍 부총리는 비공개 당정청 회의에서 “전세(거래가) 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거래량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포함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신고되지 않았던 재계약건이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무더기 신고되면서 ‘착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론 재계약건이 포함됐지만 전세 거래가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일 기준 서울시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각각 7월 계약된 건이 1만7920건, 8월 1만3469건, 9월 9473건으로 집계됐다.
때문에 가격면에서도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못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민간 부동산 통계가 호가를 반영해 ‘실제보다 높다’고 지적한 것과 반대로, 정부가 보고 있는 통계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시장에서 전세 수요자들이 느끼는 체감가격보다 낮은 값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래미안퍼스티지 59㎡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전셋값은 6억원대다. 현재 호가인 13억원 이상과는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실거래 평균값은 전세를 구하러 나선 수요자가 마주하는 값보다 낮을 수 밖에 없다.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2년 뒤 현재 가격이 유지된다면, 수억원을 올려줄 수 없는 세입자는 하급지로 밀릴 것”이라 내다봤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은 가장 전세시장 공급이 부족한 곳”이라며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전체 주택수 295만4000여채 중 2년간 전세 계약 물량은 81만채로 이들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하면 매물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산연은 내년 전국의 전셋값이 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도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음을 자인했다. 김상조 실장도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란다”면서 “단기적으론 공실로 돼 있는 아파트 또는 단독주택을 전세로 전환하는 부분 등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혼란이 가중되자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인 자신들의 잘못은 가리면서, 국민들의 고통을 그저 과도기적 문제로 절하해버리는 정책실장의 기술이 놀랍다”면서 “국민들에게 ‘불편해도 기다리라’니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감히 가질 수 없는 오만함”이라고 말했다.
yjsu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