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씨 말린 세금·대출 규제, 임대차3법 등 정책 실패 인정 안해
국민고통 해소위한 근본적 대책 강구 필요
정부는 최근의 전세대란 이유를 저금리탓으로 돌리고 국민들에게 불편해도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있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한 시민이 서울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헤럴드경제DB] |
“확실한 대책이 있었으면 발표했을 것”, “좀더 상황을 지켜보겠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전세대책 이야기다.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말이다. 국민 분노지수를 더 높인 발언도 있었다. “불편해도 기다려달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입에서 나왔다. 종합하면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NO답’이다. 미증유의 전세대란이다. 국민은 불편이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다. 7월말 임대차보호3법이 촉발시켰다. 정부는 시장 혼란은 일부 사례라고 했다. ‘저금리 탓’이라고 한다. 안정세고 과도기라고도 했다.
전세대란으로 전세는 씨가 마르고, 그나마 있는 전세매물의 가격은 급상승하고 있다. 아울러 전세의 월세전환도 가속화되는 분위기다.[헤럴드경제DB] |
통계는 다르다. 서울아파트 전셋값은 71주, 전국적으로는 61주 연속 오름세다. 이달 첫째주 전세수급지수는 130.1로 역대 최고치다. 전셋값은 오르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지표는 대란인데 안정세라고 한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문제는 대책이다. 뾰족한 수는 없다. 원인은 공급 부족인데 정부는 저금리를 지목했다. 진단이 틀렸으니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저금리가 전셋값 상승의 한 이유일 수는 있다. 근본원인은 아니다. 저금리가 원인이면 금리만 올리면 된다. 집값만 보고 그리할 수는 없다. 경제침체만 가속화할 뿐이다. 경제 정책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정책 당국자들이 더 잘안다. 그래서 저금리탓 발언이 국민들에겐 더 얄밉게 다가온다.
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전셋값 상승 이유들은 즐비하다. 실거주를 압박한 대출·세금 규제가 대표적이다. 일정기간 살지 않으면 대출을 회수하고, 보유세·양도세 등 각종세금을 중과한다. 집주인이 전세를 계속 주고 싶어도 들어와서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세입자들은 분양가 규제로 청약시장이 로또가 되다보니 전세를 살며 기다린다. 학부모들에겐 늘 민감한 학군 이주 수요도 마찬가지다. 강남, 목동 등 주요 학군지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이런 가운데 임대차3법 시행이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기존 세입자들이 갱신권을 행사해 계속 산다고 하니 매물은 더더욱 없다. 집주인은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맞섰다. 자연스레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게 될 세입자도 늘었다.하지만 기존에 있던 전세 매물은 갈수록 씨가 마른다. 신혼부부 등 새롭게 전셋집을 알아보는 이들은 애가 탄다. 수요가 넘치는 데 공급은 부족하니 값은 오른다. 초등학생도 아는 경제이론이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서울·수도권·지방의 전셋값 상승률 속도도 가팔라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임대차법 시행 후 14주간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서울 1.28%, 수도권 2.31%, 지방 2.24% 등이다. 시행 직전 14주간은 서울 0.93%, 수도권 1.61%, 지방 1.07%였다.
전세난은 기존 매물 감소와 신규 공급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지난 1년 동안 서울 세대수는 9만5000여세대가 늘었다. 하지만 올해 아파트 공급물량은 4만9000여건에 그친다. 공급확대라는 정답을 피하니 당연히 대책이 없다. 공급을 하더라도 실입주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정부로선 부동산 민심 악화에 따른 정권 지지율 하락이 고민이다. ‘대책을 위한 대책’이라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표를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여당과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다’는 정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러다보니 현실성없는 백가쟁명식 대책들만 쏟아져 나온다.
여당에선 전세기간을 ‘3+3년’으로 보장하자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여당대표는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주택·지역 개발부’를 신설하자고 했다. 국민들의 대출과 세금내역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부동산거래분석원’ 설립이 결정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다. ‘옥상옥’의 정부조직만 만든다고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고 사라질 조직들도 아니다.
공급을 의식한 정부는 수도권에 임대주택 수천 호를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총 공급량에서는 일시적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집은 임대주택은 아니다. 주택시장은 살고자 하는 지역에 수요가 몰리는 개별성도 있다. 원치 않은 곳에 공급해 줘봤자 효과는 없다.
이젠 좀더 솔직해질 시점이다. 온 나라를 ‘부동산 전쟁터’로 만든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이를 덮어넣고 국민들에게 ‘기다려만 달라’만 하고 마지못해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남발하면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1년 6개월여 남은 현 정부 기간동안 국민들이 더이상 전세 고통에 살게 해서는 안된다.
권남근 건설부동산부장/happyd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