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의 막이 올랐다. 선거는 내년 4월이지만 여당은 쇄신의 약속이던 당헌·당규까지 고치며 후보 물색에 나섰다. 야당 역시 벌써 자천타천 10여명의 후보군이 이름을 올린 가운데, 합당론까지 나오면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한 달 후 예비후보자 등록과 각 당의 경선이 시작되면 정치는 선거만 바라보며 몇 달을 보내는 진짜 선거국면에 접어든다.
이번 선거 역시 ‘돈 쓰는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지난 총선이 코로나19라는 예상 못한 돌발 변수에 여야가 국민의 혈세를 재난지원금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더 쓸지 경쟁하는 선거였다면, 내년 재보선은 시민생활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주거 복지 명목으로 돈 퍼주기 경쟁이 될 공산이 크다. 올해 들어 급등한 전월세 가격이 또다시 정치인들에게 “내가 더 해줄게”라며 돈 살포 공약을 내세우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최근 한 정치인은 전월세와 집값 상승 원인으로 공급 부족을 꼽았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또 이들이 원하는 주거지는 뻔한데 여기에 맞는 공급이 각종 규제 덕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정치인이 내린 해결책은 그러나 규제 완화보다는 정부 주도 공급 확대였다. 즉 나랏돈을 더 써서 임대주택을 더 만들고, 또 개인에게는 보유세나 개발부담금을 늘린다면 집값도 안정되고 전월세난도 해소될 것이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또 정부가 돈을 써야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돈 살포 공약 속에는 증세라는 함정이 항상 숨어있다. 이미 코로나19를 이유로 네 차례까지 추경을 하며 푼 돈은 내년부터 이런저런 증세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9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개최한 ‘2020년 세법개정안 온라인 토론회’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증세론이 나왔다. 40년 넘게 10%인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던가, 선진국 대비 낮은 소득세와 소비세를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이 이어졌다. 정부 지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데 세금은 제자리인 상황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서도 증세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벌금과 과태료, 과징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예산 중 3조4600여억원을 과태료 수입으로 책정했다. 올해보다 7.6% 늘어난 것이다. 경찰청은 내년에 교통범칙금을 올해보다 약 3000억원 더 징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법무부도 각종 벌금과 과징금 등을 올해보다 20% 가까이 더 징수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같은 증세와, 돈 쓰는 공약 사이에 시차다. 올해 총선에 남발했던 돈 살포 공약이 증세로 돌아오는 시점은 빨라야 내년부터 늘어난 근로소득세, 재산세 등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더 많은 돈은 우리 후세가 부담하는 것으로 떠넘겨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말이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많은 유권자, 또 정치인들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도 현실이다. 내년 재보궐 선거도 이런 모습이 반복될지, 아니면 다른 반응이 나올지에 따라 승패도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