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계 “합의와 인정으로 굴러가던 관행 무너져”
임대차법 시행 이후 법률구조공단 ‘계약갱신·종료’ 분쟁 증가세
최근 전세난으로 기존 집 퇴거일과 새로 들어갈 집의 입주일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졌다.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세입자가 한 달만 더 살고 싶다고 하는데 불안하네요. 가장 깔끔한 건 전세 만기일에 내보내는 것이지만 야박한 것 같고, 기존 계약서에 기한을 연장하고 퇴거일을 지정해서 도장을 찍을까요? 아니면 한 달 짜리 단기계약서를 새로 쓰는게 나을까요?”
25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존 집에서의 퇴거와 새로 들어가는 집의 입주일을 맞추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따라 퇴거를 약속했던 세입자가 이사가는 집 입주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만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돌연 말을 바꿔 2년 살겠다고 나올 것을 우려해 주저하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된 사례는 실거주목적 매수자가 기존 세입자에게 만기 6개월 전 갱신청구권 거절까지 한 상태고, 세입자도 이사갈 집을 구해 놓았다. 다만 퇴거일은 내년 1월 말 인데 세입자가 새로 구한 전셋집은 입주일이 3월 초다.
집주인이 고민하는 방안은 두가지. 우선 기존 전세계약서에 3월 퇴거일을 명시하고,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쓰게 한 다음 임대인, 임차인, 중개사의 도장을 찍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1개월짜리 단기 월세계약서를 새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위 두 방법 모두 집주인에게는 위험 부담이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세입자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최소기간이나 갱신권을 주장하면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지평 건설부동산팀 박보영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강행규정)가 ‘이 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그 효력이 없다’이기 때문에 어떤 합의나 장치를 둬도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추후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법 제4조(임대차기간 등)는 ‘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2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본다’고 정한다. 1개월짜리 단기 계약서를 쓰고 퇴거하겠다고 약속해도 마음을 바꿔 2년 더 살겠다고 나올 시에 임대인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봐주고 싶어도 자칫 재산권 행사가 막혀버리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고민스러워 한다”고 했다. 이어 “7월말 새 임대차법 시행 이전에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합의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던 일이 이제는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더 복잡해졌다”고 덧붙였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 분쟁의 양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얼굴 붉히는 일은 드물었는데 최근들어 나가기로 했다가 위로금을 달라고 하는 일이 잦아졌다”며 “위로금도 이사비 수준 이상을 원한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2+2’ 계약갱신권 때문에 3년 짜리 해외주재원 파견을 나가는 경우에는 집을 세놓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2년 전세를 주고, 기존 세입자 또는 새로운 새입자와 1년짜리 계약을 했다가는 계약갱신청구권에 막혀 귀국 후 본인 집에 못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이 차라리 빈집 상태로 두는 경우도 많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로 ‘계약갱신·종료’ 분쟁은 매달 증가하고 있다. 25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계약갱신·종료’ 분쟁 상담은 ▷7월 7건 ▷8월 39건 ▷9월 52건 ▷10월 56건을 기록하며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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