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선 소득대비 집값 15배 넘어
전세계 주요 국가 PIR 대부분 높은 상승세
OECD 기준 한국 변동 가장 낮은 편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집값이 많이 뛰는 시기면 거품 논란과 함께 늘 등장하는 지표가 있다. 집값이 연소득대비 얼마나 비싼지 따지는 ‘PIR(Price to Income Ratio)’이다. 주택가격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수치로, 소득 대비 집값이 몇 배인지 알 수 있다. 언론에서 가끔 ‘몇 년 벌어서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그 지수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후보자 [국토교통부 제공]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8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적정 집값은 어느 정도로 보느냐’는 질문에 연소득과 집값을 비교한 이 PIR 기준으로 답변해 눈길을 끌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적정 주택가격으로 연소득의 5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현재 서울 주택 가격은 그 부담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무주택 서민의 주택 구입 부담이 크다.”
‘서울 집값이 PIR 기준 5를 넘으니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다. OECD가 제시한 적정 PIR을 통해 자기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PIR ‘5’를 넘으면 거품?= OECD가 실제 이런 적정 PIR 기준을 제시했는지 확인되진 않지만, 비슷한 맥락의 기준을 제시한 다른 기관은 몇 군데 된다. 1990년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부담 가능한 주택 기준으로 ‘연소득의 5배’를 제시한 적 있다. 유엔 인간정주위원회도 주거권 차원에서 PIR의 적정 수준을 3.0∼5.0로 권고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연평균 가구소득인 4652만원의 5배인 2억3260만원만 넘어도 적정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 중위 아파트값이 9억3510만원(KB국민은행 기준)이나 하는 지금 시장 상황과 너무나 동떨어진 인식이다.현 집값의 4분의1 수준이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KB국민은행이 조사한 9월 기준 서울 주택 PIR은 15.6이다. 중산층(3분위 소득) 가구가 3분위 주택(중간 가격대 주택)을 살 때 기준이다. 변 후보가 제시한 기준의 세배가 넘는다.
이게 정말 심각한 수준일까. 집계 방식 등에서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넘베오’라는 국가별 지수 비교 사이트에 나온 도시별 PIR 정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PIR이 67,64로 공개된 도시 중 가장 높다. 그 뒤를 중국 선전(47.23), 이란 테헤란(46.06), 홍콩(45.52), 중국 베이징(41.55), 필리핀 마닐라(37.15), 중국 상하이(36.61), 인도 뭄바이(35.06), 캄보이아 프놈펜(31.58), 대만 타이페이(31.43) 등이 차지한다. 프랑스 파리(21.18), 싱가포르(19.38), 이탈리아 로마(17.63), 영국 런던(15.63), 일본 도쿄(15.40) 등 잘사는 나라도 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자료만 봐서는 PIR이 높은 것으로 집값 거품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직 개발이 안된 미개발 도시, 한창 성장하는 도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도시 등 가리지 않고 PIR이 꽤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도시가 모두 집값 거품으로 위기라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최근 5년간 국가별 PIR 변동률 비교. 우리나라는 2015년(기준 100) 보다 더 떨어졌다.[IMF 글로벌 하우징 와치 자료] |
▶“PIR로 거품 판단하는 건 무리”= 사실 OECD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국가별 도시별 PIR을 비교하는 자료를 발표하진 않는다. 소득수준과, 저축률, 인구, 주택보급률, 물가, 유동성 등이 상이한 나라의 PIR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에 비해 PIR이 평균적으로 많이 높다. 집값에 거품이 끼어서가 아니라 집값에 비해 소득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영국 보험사 타워게이트 등에 따르면 파푸아뉴기니, 콩고, 베네수엘라 등 아프리카나 중남미 지역 국가 중엔 PIR이 100을 넘는 국가가 많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별로 PIR 차이가 크다. ‘뱅킹스트레티지’라는 미국 인터넷 금융 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미국 샌프란시스코 PIR은 9.7이다. 그 뒤로 로스앤젤리스(8.9), 샌디애고(7.4), 뉴욕(6.3) 등이 따른다. 애틀란타(3.6), 시카고(3.5), 미니애폴리스(3.2), 디트로이트(2.7), 클리블랜드(2.3)처럼 2~3 정도인 곳도 있다.
지역 정부의 각종 규제완화로 단기간 주택공급이 많아 집값이 싸거나,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으면 PIR이 낮아진다. 지역의 임금수준, 물가 및 유동성 공급 흐름, 경기 상황 등 여러 요건에 따라 PIR이 제각각인데, 단순히 PIR만 놓고 특정 국가의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미국 주별 PIR 비교. [뱅킹스트레티지 자료] |
▶소득대비 집값 많이 뛰는 건 글로벌한 현상= 그런데 국가별로 PIR 변화 흐름을 따지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국가 내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면, 집을 사는 데 대한 부담이 특정 기간 동안 얼마나 커지거나 줄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자료 중 2015년을 100으로 보고 올해 3분기까지 PIR 변화를 비교한 게 있다. 100 이상으로 높아졌다면 최근 5년간 소득 증가분 보다 부동산 상승폭이 컸다는 의미다. 반대로 100 밑으로 떨어졌다면 집값이 올랐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소득 증가가 더 컸다는 뜻이다. 이 지수는 낮아질수록 집을 살 때 부담이 덜하다는 뜻이다.
이 지수를 보면 2020년 3분기 기준 우리나라는 93.32로 OECD 국가 중 끝에서 2위다. 우리나라보다 수치가 낮은 곳은 루마니아(83.70) 한 곳 뿐이다. 2015년보다 지수가 떨어졌다는 건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론 소득 수준 상승폭이 전국 집값 오름폭 보다 컸다는 뜻이다. 서울 등 특정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지표이기 때문에 평균의 착시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는 최근 5년간 집값 상승폭보단 소득이 더 많이 올랐다는 게 OECD가 내놓은 자료의 결과다.
이와 달리 미국(108.94), 캐나다(117.36) 등 북미나, 독일(121.82), 영국(111.47), 프랑스(106.24) 등 유럽, 일본(107.26) 등 이웃 국가들은 모두 집값이 소득에 비해 더 많이 올랐다. OECD 가입국 평균이 107.52다. 100에서 높아진 만큼 5년 사이 서민들이 집 사기 더 어려워졌다. 소득에 비에 집값이 많이 올라 내 집 마련하기 어려워지는 건 글로벌한 현상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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