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계약, 보증금 5억원→8억원 인상 가능”
정부 믿고 계약한 집주인·계약 앞둔 세입자 혼선
국토부 “정식 판결 아닌 조정결정, 5%룰 지켜야”
“타 사례 확정판결 전까진 유권해석 유지할 듯”
[헤럴드경제=양영경·이민경 기자] 집주인이 주택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후 첫 재계약에서 전·월세 증액 상한인 5%를 초과한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임대차시장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해 7월 새 임대차법 도입 후 내놓은 유권해석과는 상반된 데다, 정부의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한 집주인들도 적지 않아서다. 당장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어느 쪽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지를 놓고 혼란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부동산에 전·월세, 매매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연합뉴스] |
21일 대한주택임대사업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전세보증금 인상과 관련해 임대사업자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서울의 한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2018년 12월 보증금 5억원에 세입자를 들였고, 이듬해 1월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재계약을 앞두고 주변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8억원으로 3억원 올리겠다고 했다. 2019년 10월 23일 전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면 기존 계약이 있더라도 임대사업자 등록 뒤 체결하는 첫 번째 계약을 ‘최초 계약’으로 보는 민간임대주택특별법(민특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는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에 따라 기존 보증금의 5%인 2500만원만 올릴 수 있다고 맞섰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새 임대차법 해설서에서 “민특법상 임차인이라고 하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이 배제되지 않는다”며 “임대료 상한 5%가 적용된다”고 안내한 것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다. 주택 임대사업자는 주임법이 아닌, 민특법을 통해 따로 관리되고 있지만 모두 ‘5%룰’을 따라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정부의 해석이 법원의 판단으로 흔들리면서 전국에 160만여가구를 등록한 임대사업자 사이에서 혼란도 커지고 있다. 당장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집주인은 법원, 세입자는 정부의 해석을 주장한다면 갈등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앞서 정부의 말을 믿고 임대료 상한 5%를 지켜 재계약한 경우도 난감하다. 한 임대사업자는 “5%룰을 지키느라 주변 시세보다 2~3억원 정도 내려서 계약서를 썼다”면서 “이 경우 다시 계약서를 쓸 수 있는 건지, 안 된다면 손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법조계는 개인 간 계약에 따른 손해이므로 정부에 손해배상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을 봤다.
국토부는 판결이 아닌 조정 결과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정은 법률적 판단보다는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는 절차이기에 정식 판결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법원의 조정 결정이어서 정부의 유권해석을 파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새 임대차법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법원 판결에선 정부의 입장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의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임대사업자 역시 5%룰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보영 법무법인 지평 건설부동산팀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조정이 성립됐으면 상급심으로는 갈 수 없다”면서 “다른 사례가 나오고 이에 대한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정부는 유권해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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