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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서도 번호로만 기록된 신생아 [유령아이 리포트〈上〉]
출생신고 없이 숨진 혼외자식
결국 ‘無名’으로 화장터 이슬로
‘미등록 아동’ 정보공개 청구
전국 353명 사례 수집·분석

‘무명(無名)’이는 혼외 관계에서 생긴 아이였다. A씨에겐 이미 결혼한 남편과 아이 둘이 있었다. 만삭이 될 때까지 가족과 지인에게 임신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그러다 올 1월 22일 늦은 10시, 강렬한 진통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황망히 집을 나왔다. A씨는 경상남도 사천의 한 아파트 근처 산책로 풀숲에서 무명이를 낳았다. 떨리는 손으로 탯줄도 떼지 않은 핏덩이를 안아 30m 떨어진 곳에 두고 떠났다. 아이는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겨울밤을 보냈다. 이튿날 오후 2시께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그날로 경찰에 잡혔다. ▶관련기사 2면

사천서 담당 형사는 “(생모는) 남편에게 들킬까 무서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며 “아이에게 가볼까 고민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명이는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옮겨져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이는 지난 1월 말 경남 사천시 화장장에서 ‘무명’으로 화장됐다. 아이의 존재는 분류 번호로 겨우 기록됐다.

우리 주변엔 태어났지만 기록되지 못한 ‘유령 아이’들이 있다. 사천의 무명이처럼 사망한 뒤에야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사천 무명이를 비롯해 전남 여수 두 살배기 쌍둥이(2020년 11월), 인천 미추홀 8세 여아(올해 1월), 경북 구미 3세 여아(올 2월)는 모두 탄생이 기록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들은 버려지거나, 심각한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존재는 알고 있지만 복잡한 ‘어른들의 이유’로 등록이 안 되는 아이들도 많다.

헤럴드경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된 아동의 사례를 수집했다. 지난 3월부터 22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벌여 353명의 아이들이 기록되지 않았음을 파악했다. 2019년 166명, 2020년 142명이었고 올해 들어서 3월 10일까진 45명이 확인됐다. 서울과 경기도에 전체의 81% 이상이 집중됐다.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누락 없는 출생등록,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목표로 활동하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UBR Network)와 함께 진행했다.

기획취재팀=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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