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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보이스피싱 전과자를 양성하는 겁니다” [인간 대포통장]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②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인터뷰
이병찬 변호사. 그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붙잡힌 일반인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형사정책적 기조를 두고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단순 조력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여 다수의 국내 송금·인출책 범죄에 대한 경각심 강화
2020년 6월 관계부처 합동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 中
조직의 총책에 대하여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중형 구형
2021년 7월 대검찰청 보도자료 中

정부와 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기조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가담 정도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서 경각심을 높인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을 짜고, 점조직을 운영하며 피해자를 낚는 총책이야 잡기만 한다면 강력한 처벌이 당연하다.

다만 감쪽 같은 가짜 알바공고에 속아 범죄에 이용된 이들도 있다. 헤럴드경제가 3부에 걸쳐 소개한 ‘인간 대포통장’(현금수거책)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법조인, 법학자 가운데엔 “일회용 도구로 쓰이는 수거책, 전달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건 주범 억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병찬 변호사는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는 내는 이다. “국가가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이 변호사를 만나 그 근거를 들어봤다.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려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을 만나고 재판에 들어가 보면 진실로 느껴지는 감정이에요. 수거책들이 잡혀서 처벌받아도 보이스피싱 일당은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피해자가 생겼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죠. 돈도 받아낼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러니 다들 여기만 목을 조르는 겁니다.”

취재팀이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 선고된 1심 판결문 252건을 분석했더니 70.0%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77%는 1년 이상~3년 미만의 실형이었다.

[123rf]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막겠다고 일반인을 잡아 실형 주는 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라며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데 무고한 일반인이 너무 많이 엮인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10만~20만원 준다고 할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고 말했다.

검찰은 현금수거책을 대개 사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한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수거책에게 ‘미필적 고의’ 법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확정적 고의가 ‘범죄임을 명확히 알면서 이를 용인’한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는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심 알면서도 용인’했다는 법리다.

우리 형법은 고의가 없으면 과실로 본다. 과실이 인정되면 처벌한다. 다만 국내 법에선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과실치상·과실치사)만 과실로 처벌할 수 있다. 남을 돈을 가로챈 일반 사기범죄에선 과실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때문에 ‘고의는 없었음’을 증명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는 이야기가 다르다. 검찰은 “피고가 미필적으로 보이스피싱을 인지했다”는 논리로 기소한다. 법원은 ▷취업 과정 ▷업무 방식 ▷보수 수준 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겁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관여하던 사람들이나 조직적으로 대포통장을 모집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확정적 고의가 있어서 처벌받았다면 지금은 그런 사람은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필적 고의죠.”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병찬 변호사. 최재원 사진작가

이 변호사는 2018년 처음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았다. 의뢰인은 인천에선 쌀국수가게를 하던 자영업자였다. 영업이 어려우니 단기 알바를 찾다가 코인 구매대행을 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방조로 기소됐다. 수사에 배석하면서 보이스피싱이 수사기관과 사법부에서 다뤄지는 생리를 알았다.

“‘알바를 준 이들이 보이스피싱 일당임을 (의뢰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관건’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수사관들은 자꾸 ‘뭔가 이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나중에 판결을 보니 그 질문에 ‘이상하긴 했었다’고 말하면 처벌이 되더라고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면 알아봤어야 했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조사를 안 하거나 제대로 못 알아봅니다. 그러면 미필적 고의가 적용되는 겁니다.”

이 변호사가 모든 현금수거책의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부주의하게 일자리를 받아들인 책임은 있다.

“검색이라도 해보면 될 텐데 그걸 안 한 실수는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바로 징역 몇 년을 사는 건 과해요. (범죄) 예방적 효과는 집행유예만 줘도 일반인들에겐 충분합니다. 범죄에 대한 결과적 책임이든, 예방적 목적이든 실형 살게 하는 건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합니다. 더불어 ‘이런 알바도 보이스피싱이다’라는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3부]

①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8.8%가 ‘빨간줄’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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