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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스피싱 알았든 몰랐든 ‘공범’…99.2%가 ‘빨간줄’ [인간 대포통장]
인간 대포통장 〈3부 - 꼬리 자르기 〉 ①
법원 판결문 252건 들여다 보니
최재원 사진작가

‘대면편취’ 유형의 보이스피싱이 폭발적으로 늘자 재판정에 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검찰에선 “요새 구속수사받는 피의자 절반 이상이 현금 수거책”이란 말이 나온다. 이들 대다수는 수사기관, 법정에서 보이스피싱이라곤 전혀 인지 못했다고 항변하지만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경찰과 검찰은 ‘단순 가담자도 강하게 처벌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두고 최종 가담자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진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헤럴드경제는 대면편취에 연루된 현금 수거책 피의자들이 법원에서 사법처분되는 양상을 확인했다. 이들 가운데엔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범죄에 조력하고 꼬리 자르기를 당한 시민들이 끼어 있다. 누구나 부지불식중에 엮일 수 있는 일이기에 처벌 경향을 짚어보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1심 판결문 총 252건을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현금수거책’과 ‘보이스피싱’이란 키워드가 포함된 판결문 350여개를 1차로 수집했다. 이후 복수의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내용이 대면편취 유형에 해당하는 252개를 추렸다.

판결문에는 모두 257명의 피고인이 등장했다. 피고인 한 명이 평균 4.78명의 피해자를 만났고, 1억203만원의 피해금을 수거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80%의 죄명이 ‘사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연루된다면 대개 사기 혹은 사기방조 혐의가 적용된다. 분석한 252개 판결문 가운데 200건(79.4%)이 사기였다. 사기로 기소했다는 것은 피고를 보이스피싱 범행의 ‘공범’으로 판단한단 얘기다. 공범은 넓은 의미에서 공동정범, 교사범, 간접정범 등으로 나뉘는데 보이스피싱 수거책들은 대개 공동정범으로 간주됐다. 죄목이 사기방조인 판결문은 48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권 지검의 한 검사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사건 전체에서의 맥락을 본다”며 “전체적인 보이스피싱의 규모를 인식하고 그 행위의 일환으로 가담한다는 증거가 있다면 사기 공범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권해원 디자이너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기소장에는 ‘피고가 범행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경찰과 검찰은 보이스피싱을 ‘조직적 사기’로 다룬다. 단순사기보다 구형 수준이 높다. 판사가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조직적 사기의 기본형량은 일반사기보다 1년~1년6개월 더 길다.

이원일 변호사는 “사기냐 사기방조냐 분류 기준은 있다. 피의자가 충분히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하면 사기, 기능적인 행위가 없었다고 하면 사기방조인데 그 차이가 상당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사기로 기소한 사건을 이따금 재판부가 사기방조로 낮추기도 한다.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단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무죄 0.8%
권해원 디자이너

252개 판결문에 등장한 피고 257명 가운데 무죄는 단 2명, 벌금형은 1명이었다. 징역형이 180건(70.0%)으로 가장 많고 집행유예는 72건(28.8%)이었다.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진다면 어떻게든 범죄기록(전과)이 남는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 가운데 ▷‘1년 이상 2년 미만’ 72건(40%) ▷‘2년 이상 3년미만’ 67건(37.22%)으로 1~3년 사이가 전체의 80%에 달한다. ‘1년 미만’은 12.22%, ‘3년 이상’ 징역은 10.55%였다.

피고 가운데 141명은 형사처벌 이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이 가운데 89명은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초범인 점은 판사가 양형 과정에서 감안하는 주요 감경요소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금액이 크다면 초범 메리트를 기대하긴 힘들다. 피해금액이 비슷한 사건이라면 피고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봤는지에 따라 징역-집유가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123rf]

박현근 변호사는 “초범인데다가 피해금액이 적으면 재판부는 선처해준다.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금액이 회복된다면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실형”이라고 말했다.

징역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건 현금 수거책으로 엮인 이들이 좌절하는 대목이다. 범죄를 기획하고 허위로 일자리를 제공한 범죄의 몸통은 몸을 사리고 있단 점도 억울해 한다.

김장범 변호사는 “대개 부주의했던 건 있다. 잘못한 건 맞지만 그게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준인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심각하고 가만 놔두면 문제가 커지기에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처벌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게 현재 사법시스템 실무의 모습”이라고 했다.

대부분 미필적 고의
판결문에서 등장하는 '미필적 고의'

처벌하려면 법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취재팀이 살핀 판결문에선 ‘미필적 고의’ 법리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본인 행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인식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반대로 ‘확정적 고의’는 보이스피싱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가담한 것이다. 분석한 판결문 가운데 확정적 고의가 적시된 건 1개 뿐이었다. 확정적 고의가 명시되진 않았으나, 과거 다른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는 11명(재범)이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동종전과가 있다면 확정적 고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죄처분을 받은 대부분의 피고에겐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 셈이다. 법조인들은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사건에선 유독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미필적 고의는 ‘이게 혹시 나쁜일은 아닌가’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나쁜일은 불법 채권추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다수의 법원에서 ‘보이스피싱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생각했다’고 간주해 판결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이형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성)는 비슷한 논리의 무난한 판결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유죄 판결문에서 과거 판례를 언급하는데 그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라면서 “(피고가) 보이스피싱임을 미리 인식했다라는 서술은 논리적을 비약이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

④ “아빠가 죽으려 해서 미안해” 13년 카페 사장에서 공범으로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김희량·유혜정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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