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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사색] 수능이 끝이 아니다

“공부는 선생이 시키나요? 학원에서 다 시켜주는데....”

서울 강남의 한 자율형 사립고 교장선생님과 몇몇이 식사를 하다가 수능을 앞둔 학교 분위기를 묻자 나온 말이다. 강남의 교실 현장을 학교 운영자로부터 듣기는 처음이어서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흥미로웠다. 가정형편이 좋고 학생들이 대체로 온순하고 알아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없다며, 코로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대신 이 잘나가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하는 일은 좀 특별하다. 가령 편지 쓰기 같은 색다른 발상으로 모두를 당황케 한다. 카톡으로 ‘응’ ‘알써’ 정도로 두 음절을 넘기지 않는 아이들에게 편지지에 펜으로 구구절절 쓰라니 뭘 써야 할지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했다는 얘기에 웃었다.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 문장으로 넓은 편지지를 꿋꿋하게 지킨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을 쳤다. 아이의 솔직한 심경을 담은 편지에 울었다는 부모도 있고, 평소 아버지와 뜨악했는데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부모가 편지를 보내지 않은 학생에겐 교장선생님이 편지를 써서 보냈다. 집 주소를 모르는 학생들이 더러 있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반응이 뜨거워 교장선생님은 종종 편지 쓰기를 할 모양이다.

한가한 교실 풍경 같지만 사실 이 배경엔 살벌한 입시가 있다. 고등학생이 있는 모든 집이 겪는 불안과 갈등의 씨앗인 성적과 점수에 따른 불협화음과 상처를 보듬어주고자 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온 가족이 피폐해지는 대한민국의 입시전쟁은 대체로 초등 5, 6학년 때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내 아이가 공부 좀 한다’ 하는 엄마들은 이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정보를 모은다. 선택지는 특목고, 자사고, 강남학군. 강북에서 강남으로, 여기서 뭔가 애매하면 외국으로 유학하는 경로도 있다.

최근 출간된 대치동 엄마들이 쓴 성장기이자 분투기 ‘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를 보니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이 대치동 엄마들은 큰 결심을 하고 아이가 초등학교 때 강남행을 결정한 경우다. ‘엄마, 아빠표 교육 이상의 터치’, 한 마디로 우수한 대치동 학원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들이 입성하기 무섭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간다는 영어·수학학원을 수소문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찾은 학원의 학습 레벨 테스트에 대체로 좌절한다. 수준이 미달이거나 선행이 덜 됐다는 이유로 원하는 학원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아이도, 엄마도 웃음을 잃게 된다. 상위권이었던 아이의 성적은 떨어지고 자신감도 잃어간다. 대치동에 오면 교육이 저절로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능력과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아이에게 좋은 스펙을 쌓아주려는 일련의 여정이 삐걱거리면서 압박감은 커간다.

그래도 이 엄마들은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원하는 걸 찾아내 평화를 찾은 다행스러운 여정을 보여주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많다.

한때 정부는 대대적으로 학원과의 전쟁을 치른 적이 있지만 효과는 없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목고, 자사고 폐지에 열을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미래를 준비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대학생 자퇴율·청년실업률·청년 취업포기율이 역대 최고치다. 수능이 끝이 아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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