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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황소’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언론노동자로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비어 있는 부분도 많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황소의 힘’도 그중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를 출입했다면 뚝심의 대명사인 황소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황소는 TV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기억을 더듬어도 어릴 적 외할머니집 외양간에서 부지런히 여물을 먹고 있던 소가 전부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소였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싸움소 바우’와 같은 동화책을 읽어줄 때도 실감 나게 표현하지 못했다. ‘황소는 무척 힘이 세다’는 느낌 없는 이야기만 전할 뿐이었다. 커다란 뿔과 떡 벌어진 어깨, 늠름한 걸음걸이에서 나오는 뚝심은 전달하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황소의 뚝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한국거래소 여의도사옥 정도다. 사옥 안에 있는 ‘황소상’은 황소가 곰을 밀어 넘어뜨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주식상승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망이 담겨 있는 조형물이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 만날 수 있는 맨질맨질한 청동황소상의 모습은 아니지만 거친 피부와 다부진 어깨에서 솟아나는 뚝심을 느낄 수 있다. 다음달 황소상이 25년 만에 실외 정문 쪽으로 옮겨진다고 하니, 여의도를 방문하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황소의 힘은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를 맞아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방문한 소싸움 경기장은 황소의 힘을 직관할 수 있는 장소였다. 특히 13일 8경기에서 펼쳐진 청도 황소 ‘갑두’와 ‘은돌’의 경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 31전31승, 승률 100%를 자랑하는 갑두의 경기 모습은 이중섭의 ‘흰소’나 ‘황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힘을 연상시켰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황소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술렁이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1t에 육박하는 싸움소들의 소리는 ‘음메~’하고 우는 일반소들의 소리가 아니었다. ‘우렁우렁’ 거친 숨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목소리에는 싸움을 앞둔 소들의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싸움장에 들어서는 황소들의 움직임 역시 이채로웠다. 최강 싸움소인 갑두와 경기를 아는지, 은돌은 경기장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어렵게 경기장에 들어가서는 머리를 모래바닥에 문지르면서 이상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갑두는 최강자답게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자 황소들의 뿔치기가 이어졌다. 둔탁한 소리가 싸움장을 휘감았다. 몇번 경합이 이어졌지만 이내 갑두가 뿜어내는 힘에 밀려 은돌이 등을 돌렸다. 꼬리를 보이며 도망가던 은돌의 뒷다리엔 갑두의 뿔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렇게 황소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지만 일각에선 소싸움장을 둘러싼 찬반 논란도 있다. 동물 학대라고 주장하는 동물단체들의 우려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싸움소의 생명권이 강화되는 방향의 계승 발전이 좋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소싸움장이 아니더라도 황소의 힘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송현동으로 장소가 결정된 이건희 기증관에 걸릴 ‘황소’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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