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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리다 지친다’… ‘쪽지예산’이 계속되는 이유 [이런정치]
매년 다가오는 국회 예산안 정국
올해도 여야 극심한 대립 속 예산심의
국회의원들 ‘예산 챙기기’ 반복
소소위 통해 증액예산만 조 단위 헤아려
김진표 국회의장이 15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위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김 의장,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연합]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 1. 지난 2014년 예산안 처리 때다. 여당 A의원이 본인 지역구의 한 초등학교에 체육관을 짓는 예산을 예산안 통과 직전 예결위 간사에게 전달했다. 해당 예산은 그대로 예산안에 반영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쪽지예산의 부당성’을 주제로 기사를 썼다. 별다른 심의 없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취지였다. A의원실은 해당 기사를 지역구 홍보에 활용했다. 이후엔 기사와 유사한 포맷으로 ‘홍보자료’를 만들어 역으로 기자들에 배포하기도 했다.

# 2. 신년이 되면 국회의원들은 의정보고서를 작성한다. 주로 지역 담당보좌관들이 지하철역 등에서 의원과 함께 의정보고서를 인쇄해 배포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지역구 의원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이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다. 당연히 ‘중앙무대 예산 확보’는 1면 톱에 배치된다. 중요도가 1순위라는 얘기다. 사실 ‘쪽지예산’은 취재가 쉽다. 의원들이 만들어 배포하는 의정보고서만 묶어도 한 트럭은 족하다.

▶의원들 ‘지역전’ 총력=올해도 예산안 시즌이다. 2022년 예산 정국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인하 의지 때문에 꽉 막혀 예산 처리기한을 2주 넘게 지나쳤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예산 감액 항목과 규모에 대해 ‘대선 불복’이라고 비판하고, 민주당은 ‘서민예산 증액’을 강조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을 강하게 막아서고 있다. 아직 연말까지 시한이 남아 언제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올해에도 예산안 처리 마지막에 끼어드는 ‘쪽지예산’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우선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내년 예산안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 2024년 국회의원선거(총선)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체육관 예산이든, 도서관 예산이든 총선 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선 일단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야 총선 전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안팎에서 ‘그래도 정부 원안 처리는 안 될 것’이란 전망은 여야 지역구 의원들의 ‘지역예산 반영’ 의지가 상당하다는 것이 큰 배경이다.

특히 수도권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 수가 많고, 지역구 의원 의석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더 많다는 점은 민주당이 ‘감액 예산 수정안’으로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의 배경이 된다. 상대적으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자체가 여당 측 의견을 다수 들어 작성된다는 점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야당 의원들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올해는 검찰 수사 및 이태원 참사 등을 둘러싸고 여야 예산안 소위가 제대로 기능을 못했다. 예정됐던 회의는 파행이 일쑤였고, 이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의 예산 확보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는 것이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밀실 야합 ‘소소위’ 베일=‘쪽지예산’의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어떤 식으로 국민세금을 요구하고 그 논의 과정은 어땠는지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쪽지예산은 ‘소소위’라는 비공식 회의체를 통해 확정되는데 참석자는 예결위원장,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장·차관 정도로 극히 소수로 제한된다. 소소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말 그대로 국회와 정부가 예산 뒷거래를 하는 현장이 소소위인 셈이다.

시민단체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올해 국회가 증액한 예산 8조9000억원 가운데 공식 예결위 회의를 통해 확정된 건 0원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국회 증액’된 조 단위 예산은 모두 비공개 협의체인 소소위를 통해서 증액됐다는 설명이다. 지난해에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 가운데 소소위에서 100억원 이상 증액된 사업은 모두 79개로 집계됐다.

당내 실세 의원들의 ‘예산안 확보’ 전쟁 역시 올해 예산안 처리시점을 전후해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다. 국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엔 ‘형님 예산’이, 박근혜 정부 땐 ‘친박 예산’이 넘쳐났다”며 “올해도 여야 핵심 실세 의원들의 예산안 확보 경쟁은 치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지역 예산을 확보했는지는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주 소상히 알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은 ‘지역일꾼 OOO 의원, 지역예산 OO원 확보’ 등의 포맷으로 홍보자료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도자료가 미흡했다면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정보고서’엔 반드시 예산 확보 성과가 포함된다. 당장 총선을 앞둔 내년 예산안에 여야 의원들이 모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KBS와 인터뷰에서 “거대한 공생관계다. 국회의원으로서는 ‘내가 예산을 얼마 따왔다’고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며 “예산안 마지막 협상은 비공개로 이뤄진다. 이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쇼처럼 보인다”고 강조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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