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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부터 예견된 ‘최장 지각’ 예산, 협상 막전막후[이런정치]
9월 예결위에서 ‘준예상 가능성’
野 자체 수정 예산안 작업 돌입
尹표-李표 예산 격돌
부자감세냐 건전재정이냐
5번의 데드라인 끝에 타결
양당 기득권 정치 구조 문제의식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 박홍근 원내대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9월부터 예견된 일입니다.”(야당 소속 예산결산특별위원)

지난 9월 중순 결산심사를 진행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됐다. 결산심사소위원회에 참석한 예결위원들 사이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준예산으로 편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다. 국민의힘 소속 예결위원들이 준예산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고, 이때부터 더불어민주당 소속 예결위원들 사이에서는 자체 수정 예산안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사태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여야의 예산 협상은 지난 9월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재정 철학’부터 격돌, 협상은 정쟁으로

지난 9월 정기국회부터 시작한 여야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초반부터 여야간 파열음이 컸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639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재정운영의 기본 철학부터 여야는 차이를 보였다. 국민의힘은 지난 정부에서 부채가 늘어났다며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건전재정 기조를 내걸었다. 반면 민주당은 향후 경기침체를 대비해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고 서민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재정확대가 필요하다며 맞섰다.

여야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프레임을 씌우며 상대 당의 구체적인 사업 예산을 깎는데도 전념했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치적으로 유명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예산 편성을 했고,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 등을 타깃으로 삼고 감액을 밀어붙였다.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은 삭감시킨다는 정쟁으로 초반부터 예산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같은 양당의 대립은 구체적으로 세입, 세출 예산을 심의할 상임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산부수법안의 대부분을 심의할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 문제 등 세법 개정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렸다. 상임위에서 진행된 예산안 예비심사가 파행되거나 한 쪽당 단독으로 처리되는 일이 반복됐다.

여야 대치 양상은 예산 본심사를 담당하는 예결위로 이어졌다. 쟁점 예산을 둘러싼 이견이 워낙 컸던 탓에 예결위 법정 활동 기한인 11월 30일까지 증액 심사는커녕 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 무렵 정부 동의가 필요한 증액 부분은 빼고 삭감만 반영된 ‘수정 예산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단독으로 처리할 가능성까지 공언하기 시작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자체적으로 수정 예산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9월부터 준예산이 언급됐기 때문”이라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데 9월부터 준비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데드라인 무의미, 중재안 전격 수용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16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위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기념촬영 후 자리에 앉고 있다. 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김 의장,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연합뉴스

예결위의 손을 떠는 예산안은 여야 지도부 차원의 협상으로 이어졌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이틀 넘긴 이달 4일 여야는 양당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 타결을 시도했다. ‘2+2 협의체’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자 여야는 기존 협의체에 국민의힘 주호영·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까지 합류한 ‘3+3 협의체’를 가동했다. 원내대표가 참여해 예산 협상 당사자들의 재량권을 강화해 타결 가능성을 한층 높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 과정에서 쟁점 중 하나였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관련해 정부 안대로 25%에서 22%로 인하하되 시행 시기는 2년 늦추는 중재안을 내놨다.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에 더해 국회의장까지 중재안을 제시하며 예산안 합의 가능성을 높였지만 결국 여야는 정기국회 회기인 9일에도 합의에 실패했다. 당시 야당이 단독으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고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도 예산안 협상의 냉각기가 더 길어진 배경의 하나였다.

두 번째 예산 처리 기한(9일)을 어기면서 법인세 인하와 시행령으로 신설된 기구(경찰국·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이 여야의 예산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초부자 감세’라며 불수용 입장을 고수했고,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이 소위 ‘시행령 통치’에 따른 위헌·위법 요소가 있는 기구인 만큼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대 쟁점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의 협상에 김 의장은 15일 두 번째 중재안을 내놨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1%포인트(p) 낮추고, 경찰국 및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의 경우 여야 합의로 ‘입법적으로 해결하거나 권한 있는 기관의 적법성 여부에 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예비비로 지출하도록 부대의견에 이를 적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의장은 중재안을 제시하며 당일까지 예산안 협상을 마칠 것을 여야에 촉구했다.

이에 민주당은 이재명 당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며 여당 역시 중재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법인세 인하 폭이 턱없이 작다는 점, 경찰국 등 기구에 ‘위법’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점을 들어 중재안 수용을 사실상 거부했다. 결국 여야는 김 의장이 제시했던 예산 처리 시한인 15일과 19일 모두 지켜지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여당이 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은 배경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반대’를 지목하며 지지부진한 예산 협상의 책임이 대통령실로 돌렸다.

막판 타결, 김 의장의 당근·채찍..내년도 되풀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의장의 두번째 중재안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년도 예산이 준예산으로 편성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의원장은 최후의 통첩을 했다. 오는 23일에 본회의를 열어 여야가 합의를 이루면 그 합의안을, 합의를 보지 못하면 본회의에 부의된 정부안 또는 민주당의 수정안을 표결 처리하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야당 자체 수정안이 통과된다면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려는 사업에 제동이 걸린다는 실리 측면에서 잃을 것이 많았고, 민주당은 새 정부 첫 예산부터 발목을 잡는 초유의 야당 예산안에 정치적 부담이 컸다. 결국 여야는 22일 오후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등 쟁점 현안에 대해 일괄 합의했다.

예산 협상의 막판 타결에는 김 의장의 중재안과 압박이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협상 막판까지 쟁점이었던 법인세율 인하와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문제를 풀어내는데 김 의장 중재안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다. 아울러 법정시한(12월 2일)과 정기국회(12월 9일)를 넘겨서도 예산안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김 의장이 오는 23일로 못박아 최후통첩하며 여야를 압박한 것도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다.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여야 역학 구도에서는 내년에도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제3의 중재 세력 없이 거대 양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든 정쟁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지적도 같은 문맥이다.

한 초선 의원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견고한 만큼 상대 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만 집중하며 정쟁이 여야의 대립이 극에 달한다”며 “예산 협상 역시 사실상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한 셈”이라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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