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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140만명이 만든 ‘135일의 기적’…포스코, 수해 딛고 新철강사 도약 ‘구슬땀’
슈퍼태풍 ‘힌남노’로 쓰러진 강철의 거인
침수 나흘만 고로 재가동…하루 1만5000명 복구 참여
한걸음에 달려온 퇴직 선배…미래 제철소로 본격 변신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헤럴드경제(포항)=김지윤 기자]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해 9월 6일.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명절을 앞둔 설렘보다는 무거운 공기에 휩싸였다.

슈퍼태풍 ‘힌남노’가 대만과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포항 일대를 강타하면서다. 새벽 6시 공장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빗물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제철소를 집어삼켰다. 창사 54년 만에 맞이한 초유의 사태였다.

동이 트고 마주한 제철소의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백희 포항제철소장은 “34년의 세월을 철강쟁이로 살아오며 단연코 처음 목도하는 모습이었다”며 “흙탕물로 뒤덮인 공장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쇳물이 굳기 전에 용광로(고로)를 살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에는 총 3기의 용광로가 있다. 태풍 피해로 순차적으로 휴풍(休風)에 들어간 용광로를 되살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임직원들이 밤새워 복구에 매진한 끝에 침수 나흘 만인 9월 10일, 3고로를 재가동했다. 이어 나머지 두 개의 고로도 12일 재가동하며 큰 고비를 넘겼다. 이어 17개의 압연 공장까지 순차적으로 재운행되며, 올해 1월 20일부터 완전 정상 조업체제에 돌입했다. 피해 발생 135일 만이다.

지난 23일 방문한 포항제철소에서는 이처럼 긴박했던 135일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포스코는 포항 본사 1층에 복구 과정을 담은 전시회 ‘포항제철소 정상가동 기념 감사의 장(場)’을 진행 중이다.

냉천 범람 직후 불 꺼진 제철소 전경을 비롯해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감동의 순간을 담은 60여 점의 사진을 전시했다. 하루 평균 1만5000명, 누적 투입 인원만 140만명. 수십여개의 민관군의 복구 지원과 임직원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경북 포항 포스코 본사에서 열리고 있는 ‘포항제철소 정상가동 기념 감사의 장(場)’ 전시. [김지윤 기자]

전·현직 임직원들은 제철소 복구에 발 벗고 나섰다. 1냉연공장 김우제 부공장장은 물을 퍼올리는 기계인 ‘양수기’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이 동분서주했다고 회상했다. 한 직원은 경북 영덕 고향집 경운기에 달린 양수기를 떠올렸다. 또 다른 직원은 이 경운기를 싣고 오기 위해 중고 트럭을 선뜻 내놨다. 김 부공장장은 “고향 집 살림까지 털어 온 직원들의 기지와 열정”이라고 평가했다.

고로 안에서 쇳물이 굳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전 활용했던 ‘사(沙)처리’ 방식을 다시 시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선 70세가 넘는 퇴직 선배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사처리는 쇳물을 모래 위에 부어 처리하는 방식으로, 35년 전 포스코 내에선 자취를 감춘 기술이다. 퇴직 선배의 도움으로 긴급 사처리장을 만들고, 덕분에 고로 정상 가동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현철 열연부 2열연공장 파트장은 “고로에서 첫 제품이 나올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부소장은 “당시 620만t의 물이 제철소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여의도를 2.1m 높이로 채우는 막대한 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급사의 필요 재고를 전수 조사하고, 협력사의 매출감소,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등 서플라인 체인 내 피해를 막기 위해도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는 복구 기간 부족한 물량을 메우기 위해 광양제철소를 증산하고, 국내외 네트워크 활용에 만전을 기했다.

지난 23일 기자단이 포항제철소를 둘러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지난 23일 기자단이 포항제철소를 둘러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이날 둘러본 제철소 역시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힌남노로 한때 식어가던 고로는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500도를 넘나드는 고온의 고로로 얼굴에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스마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선공정에서는 용광로의 통기성, 연소성, 용선 온도, 출선량 등을 AI가 제어하고 있었다. 용강로에서 만들어진 선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공정, 직육면체 모양의 철 덩어리 ‘슬라브’를 만드는 연주 공정에서는 온도, 성분을 제어하는 AI 통합 제어 시스템이 멈춤, 지연 없이 연속 공정을 가능케 했다.

포스코는 미래 철강 시대를 위해 수소환원제철인 ‘HyREX’ 시험 설비 도입도 준비 중이다. 2026년 이 설비를 도입한 뒤 2030년까지 HyREX 상용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2050년까지는 포항·광양 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스마트 팩토리 등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포스코가 국내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구현한 첨단 센터인 ‘체인지업그라운드’에도 방문했다. 2021년 7월 개관한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현재 113개로 기업 가치만 1조4086억원에 달한다.

2021년 문을 연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스코 제공]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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