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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장난감 자동차 작전

1950년 12월 20일, 서울 서쪽 하늘은 찌푸려 있었고 전쟁의 전황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북풍이 눈발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날 오전 8시, 미국 제5공군 소속의 C-54와 C-47 수송기 16대가 김포비행장에 착륙했다. 가족을 잃고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지쳐 있는 전쟁고아들을 공수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11시께 수송기들은 전쟁고아 1000여명을 싣고 이륙했다. 작전명은 ‘장난감 자동차 작전(Operation Kiddy Car Airlift)’이었다.

고아들의 제주행은 순탄치 않았다.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떻게 가야 할지, 아이들이 한파를 버틸 수 있을지 등 그 어느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로 행선지가 정해졌고 해군의 협조로 인천항에서 상륙함을 타고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상륙함은 오지 않았다. 다른 작전에 투입됐던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고아들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김포로 이동했다. 김포비행장은 실낱 같은 약속의 장소였다.

전쟁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덮쳐 와서 전쟁고아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을 보살피고 구조하는 인류애를 몸소 실천한 전쟁영웅들을 호출하기도 한다.

‘장난감 자동차 작전’에 관여한 수없이 많은 인물이 모두 다 영웅들이겠지만 러셀 블레이즈델(Russell L. Blaisdell·1910~2007) 대령과 딘 헤스(Dean E. Hess·1917~2015) 대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미 5공군의 군목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 이곳에 주둔하면서 군용트럭으로 서울 시가를 매일 돌며 고아들을 구조했고 그의 주도로 창설된 서울 고아수용센터에서 1000여명의 전쟁고아를 돌봐왔다. 전쟁 중 갖은 노력으로 성금과 물품을 모아 아이들을 지켜냈다.

고아들이 제주로 이동한 후에도 그의 지원은 계속됐다. 이후 ‘1000명의 아버지(Father of a Thousand)’라는 회고록을 남겼고, 광주 충현원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초기 우리 공군이 미군으로부터 인계받은 F-51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위해 미 공군이 창설한 ‘바우트 원(BOUT-1)’부대를 이끌며 한국 공군을 거듭나게 했다.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250여회 전투 출격을 한 참전 조종사였고, 전투기에 새긴 ‘신념의 조인(信念의 鳥人)’은 우리 공군의 상징이 됐다. 전쟁 후 ‘전송가(Battle Hymn)’를 저술했고 같은 이름의 영화가 이 작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수익금 등으로 20여년간 고아들을 후원했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공적 기념비가 있다.

지난 11일 공군이 주관한 딘 헤스 추모행사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70여년 전 고아들을 싣고 이 비행장을 이륙한 C-54 수송기에 오른 러셀 블레이즈델과 F-51 무스탕 전투기에 올라 수송기를 뒤따르는 딘 헤스의 제주행을 상상해 봤다. 어떤 것은 우연이었고 어떤 것은 선택이었으며 또 어떤 것은 결단이었겠지만 수송기의 마지막 문이 닫힌 후 안도의 한숨과 함께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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