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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장현-길채 멜로외에 또 하나 남긴 메시지는?[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연인’ 황진영 작가의 떡밥회수력은 좋았다. ‘연인’은 마지막회에서 두 가지를 정리했다. 첫번째는 장현(남궁민)과 길채(안은진)의 엇갈리기만 하던 가슴 시리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눈물의 재회로 완성시키며 여운을 남겼다. 이제 두 사람은 능군리에서 돌덩어리, 풀데기 처럼 하찮게, 시시하게 살 것이다.

또 하나는 무엇일까? 이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진 질문이자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조선사회의 위기 대응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와 의리가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조선의 지식층 등 사회정치 주도세력들이 사직이 위태로울 때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래서 어떤 댓가를 치렀고, 후세에게는 어떤 교훈을 남겼느냐에 관한 문제다.

고려대 역사교육과 조영헌 교수는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정묘, 병자호란의 원인은 제국의 폭력성과 조선 지배층의 경직성이 얽혀 일어난 사건이라고 했다. 조선 지배층의 경직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훈구파와 사림파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태조, 태종, 세조 등 초기에는 혁명파, 훈구파가 주도했다. 혁명을 할수록 훈구파는 늘어난다. 공신중에는 능력있는 정치인이나, 문에 능한 지식인도 있었지만, 국정농단세력화하기도 한다. 혁명을 통해 공신이 된 훈구파는 왕을 좌지우지 하기도 했다. 여기에 왕과의 혼인 관계로 권력을 잡은 척신(戚臣)까지 늘어났다.

물론 성종때 지방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던 사림인 김종직 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사림 기용이 늘어나면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는 연산군~명종때 4대 사화(士禍)로 나타났다.

선조때부터는 사림들이 본격 득세하면서 서인과 동인으로 대립했다. 동인은 선조말에 남인과 북인으로 나눠진다. 처음에는 왕의 입장에서는 칼을 들고 있던 훈구파보다는 서원을 중심으로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사림을 쓰는 게 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선조는 특히 정통성이 가장 약한 왕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 같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이자 일곱번째 아들인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이었으니 방계중의 방계다.

1623년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때 득세한 북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남인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의 생각과 유교적 기반의 사고관을 정치에 펼쳤다. ‘연인’에 등장한 김자점, 김집, 심기원, 김류, 최명길 등은 모두 서인이며 인조반정의 공신이기도 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유학자 장철(문성근)도 그런 부류의 하나로 보인다.

장철은 마지막회에서 붓글씨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지금 이 나라 사직을 위협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저들은 오랑캐와 친하게 지내며 나라의 이익을 팔아먹는 매국노요. 오랑캐에게 정조를 잃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인들이며, 문란하게 남색하는 더러운 색정들이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떨어지는 사고지만, 유교사회인 17세기 조선이라는 걸 감안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래도 뭔가 경직성이 느껴진다. 교조적이고 가부장적이다. 쓸데없는 의식과 절차는 더 많아진다. 점점 명분(名分)론에 치우친다. 유교적 병폐라 할만하다.

장철에게 배운 성균관 유생 연준(이학주)도 스승을 닮았다. 처음에는 아내인 경은애(이다인)가 오랑캐에게 손을 잡힌 일을 오래 숨겨왔다며 아내를 부정했다. 그러다 마지막회에는 결국 아내와 함께 능군리를 가자고 한다. 이처럼 그는 성찰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 마지막회 엔딩쯤에 와서 연준은 독백한다. “예와 의리가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힘써왔지만, 내가 지킨 조선은 어떠한가”라고.

그의 스승 장철은 성리학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리학은 간단히 말하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등 자연의 질서를 인간관계에 접목시킨 철학사상체계다. 그래서 자신의 딸을 사랑한 노예인 삼도를 죽도록 때렸다. 상하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의 죽음도 방조했다. 장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아들 장현도 아닌, 가문의 위신이었다.

장철의 아들 장현(남궁민)은 아버지의 경직성에 반기를 들며, 부자관계를 끊어버렸다.아버지의 사고체계를 따를 수 없었다. 그래서 장현이 아닌 이장현으로 살았다. 17세기에 장 씨에서 이 씨로 성(姓)을 바꿔 살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는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예와 도리의 실천을 아버지 스타일로 해야 했을까? 아버지 장철은 더 큰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도려내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너(장현)와 내가 합십해 가문을 지키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킨 것”이라며 목을 매어 죽는다.

장현은 이렇게 해놓고 자결하는 게 최선이 아님을 안다. 장현의 행위는 인간에 대한 도리와, 인간존중에 바탕해 한번 맺은 인간과의 의리, 그리고 한 여인을 사랑하는 순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장현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그 원칙에 구속되어 버리지 않는 유연함이 있다.

장현이 호란후에도 남은 조선 포로들을 안전하게 능군리까지 인솔하고, 건달 형님 구양천(최무성)과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양천은 포로를 잡으러온 관군의 화살을 맞아 사망했지만, 장현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현은 호란후 조선포로들의 속환을 포기하고, 도망간 포로를 잡아들이라는 청나라 방침에 적극 협조하는 인조(김종태) 왕의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며 홀로 포로구하기에 나선다.

장현은 ‘연인’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거 품고 있는 영웅(히어로) 캐릭터다. 장현을 보면서 “그런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장현은 그런 말이 나오는 판타지적 인물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남연준이 더 개연성이 높은 캐릭터다. 하지만 연준은 성리학이라는 테두리내에서도 반성하며 성장했다. 그런 연준이 하나둘 많아지면, 장현 처럼 진짜 의(義)를 실천하는 캐릭터도 현실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P.S)요즘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 등 사적 복수를 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온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인’에서는 아무 잘못이 없는 조선 백성이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고생을 하고 있고, 여성은 환향녀라는 이중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조 왕을 볼 수 있었다. 이러니 장현이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이 아닌데도 홀로 나서 원맨쇼를 펼쳐야 한다. 장현 한사람에게 너무 큰 짐을 지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장현 같은 인물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많이 포진해 있으면 사적 복수를 안해도 되고, 좀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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