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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96차례 재판 끝에 ‘무죄’…초대형 M&A 등 ‘뉴삼성’ 숨통 트나 [비즈360]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민지·김현일 기자] 이재용 삼성 회장이 5일 삼성그룹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로써 9년째 겪어 온 사법리스크를 벗어날 실마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특히 초대형 M&A 등 그동안 미뤄졌던 삼성의 적극적인 투자에 속도가 본격 붙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 2020년 10월부터 시작된 이번 1심 재판 기간 이 회장은 96차례 법정에 출석했다. 이날 재판 시작 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 이 회장은 재판부의 무죄 선고가 나오자 비로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 회장은 가장 먼저 법원 속기사에게 다가가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건넨 후 다른 피고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20여명의 변호인단 역시 법정에서 나와 서로 등을 토닥이며 “고생많으셨다”고 격려했다.

이 회장으로선 이번 1심 재판부로부터 유리한 판단을 이끌어 낸 만큼 향후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도 선고 결과에 전반적으로 안도하는 분위기 속에 경영 정상화를 다짐하고 있다.

재계와 학계는 이번 무죄 판결을 동력으로 삼아 삼성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인수합병(M&A)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지난해 조 단위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 반등을 모색하기 위해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검찰이 항소할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최대 3~4년 더 걸릴 수 있어 수년간 지속된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

▶총수 결단 필요한 대형 M&A 본격 시동=우선 삼성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대형 M&A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많게는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대형 M&A 결정에는 총수인 이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지난해부터 핵심사업 곳곳에서 ‘위기’를 암시하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삼성의 무기인 ‘초격차’로 시장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대형 M&A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은 3년 전 처음으로 대형 M&A를 약속했다. 지난 2021년 1월 말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최윤호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M&A 대상을 매우 신중하게 검토했으며 2023년까지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 불안 등이 맞물리며 약속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다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 M&A를 발표하겠단 의지는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M&A 환경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지만 기존 사업 강화와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삼성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대형 M&A는 착실히 (준비)하고 있어서, 올해는 계획이 나올 것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도 M&A 대상 후보군을 추리고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이 고려해볼 수 있는 대형 M&A 분야로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첨단 패키징 등이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빅딜을 허용하지 않는 규제 분위기를 고려해 기술 독점 우려가 덜한 미래 성장사업을 눈여겨볼 가능성이 있다. 삼성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모든 분야에서 AI와의 시너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차세대 반도체 기술로 꼽히는 3D 패키징 분야와 메타버스 및 XR(혼합현실)도 삼성이 지속적으로 공들이고 있는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년 동안 AI, 디지털 헬스, 핀테크, 로봇, 전장 등 미래기술과 관련된 5개 분야에서 260여개 회사에 벤처투자를 진행했다. 지난해 로봇 전문업체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두 차례 지분 투자를 진행했고, 자회사 하만을 통해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회사 ‘룬’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반도체 부진 만회 묘책 관심…테일러 공장 개소식 참석 가능성도=이 회장이 그간 반도체 부진을 떨칠 묘책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텔에 전체 반도체 매출 1위를 빼앗겼다. 2030년까지 1위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파운드리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설상가상 늘 1위를 유지하던 메모리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대한 판단 미스로 SK하이닉스보다 한 발 뒤쳐지고 있다. 내외부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비전 없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삼성전자가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하다 보니 인력이 많이 부족한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 회장은 가장 먼저 AI 설계 기술 분야에서 과감한 M&A로 해외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신입 엔지니어 육성에도 주력해야 한다. 이는 이 회장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외 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국내 소부장 업체도 육성하는 등 앞으로 총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가동을 앞둔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의 개막식도 성대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회장이 테일러 공장을 직접 찾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만날 지도 주목된다. 삼성 내부에서는 지난해 열린 TSMC의 애리조나 공장 장비반입식에 못지 않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당시 TSMC 장비반입식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팀 쿡 애플 CEO와 함께 등장해 화제가 됐다. 삼성도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 CEO들을 대거 초청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할 전망이다.

경제단체들도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고현 한국무역협회 전무이사는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삼성이 더욱 진취적인 전략을 통해 AI 등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국민으로부터 보다 신뢰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도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등기이사 복귀 시기 관심 쏠려…“책임경영 필요”=이번 무죄 선고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현재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삼성전자 사내이사를 맡으며 등기이사에 올랐으나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현재 미등기 임원 신분이자 무보수로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2021년 1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취업제한으로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못했으나 지난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걸림돌은 사라졌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하면서도 등기이사 복귀는 서두르지 않았다. 삼성그룹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회장이 이번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등기이사 복귀 논의는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검찰의 항소로 사법리스크가 이어질 경우 등기이사 복귀가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계는 이 회장이 등기이사 복귀를 통해 회장 취임 이후 본격적인 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재근 학회장은 “최근 삼성이 반도체 분야에서 개발 속도가 늦어지고 글로벌 리더십도 많이 약화된 만큼 삼성이 다시 1등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이 회장이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도 “삼성이 지금 휴대폰과 시스템 반도체 사업 전반에 걸쳐 부진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그걸 다 잡는 경영을 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야성이 있는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joze@heraldcorp.com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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