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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옳은 일 해야” 오직 환자 위해 한평생…이런 한국인 의사가 있었다
고(故)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우린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장소,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We must do the right things. We must do them in the right places And we must do them right ways.)”

지난 2003년 1월. 한국인 최초로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 오른 인물이 있다. 그의 취임사는 전 세계 심금을 울렸다. 그의 인생이 이 취임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고(故)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의 얘기다. 그의 칭호 중엔 의사가 가장 잘 어울린다. 평생을 소아마비, 한센병, 결핵 등을 치료하는 데에 바쳤기 때문이다.

의료공백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의사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거세진 가운데, 이 전 사무총장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의대 증원 찬반을 떠나 다시금 떠올려 볼 의료인의 소명이자 귀감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 사회 어딘가에는 그의 일생을 지표 삼는 의료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故)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 [헤럴드DB]

대한간호협회는 11일 성명을 통해 “한때 우리나라는 전 세계 질병퇴치 활동을 하다 순직하신 고 이종욱 박사님을 보유했던 참된 의료 정신이 살아있던 의료 선진국이었다”며 “그건 우리나라가 단순히 의료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다. 전 세계인에게 참된 의료가 무엇인지, 의료가 나아갈 길과 정신을 보여주는 진정한 리더의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65만 간호인은 의료인으로서 고 이종욱 박사님의 정신을 존경한다”며 “생전에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그 정신이 제도화되길 의료계, 정부, 정치권에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사무총장은 원래 의사가 아녔다. 그는 한양대 건축공학도였다. 하지만 이후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뒤늦게 서울대 의과대학에 진학한다. 고학 끝에 어렵사리 학위를 취득하고선 의료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그 때 그는 평생을 함께 할 아내도 만났다.

그가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리게 된 것도 세계를 누비며 의료 봉사활동에 전념한 이후부터다. 아내와 함께 남태평양 섬나라로 가 한센병 환자 치료에 나섰다. 당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그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WHO와 인연을 맺게 되고, 이후 결핵 등 백신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아동질병 예방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그는 아이들의 질병 예방에 심혈을 기울였다. WHO에서 어린이 백신 사업을 맡으며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실제 큰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2003년, WHO 사무총장직까지 오르게 됐다.

지난 2016년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의 미망인 카부라키 레이코 여사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고인의 10주기 추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그는 소박한 삶으로도 유명했다. 국제지구 최고 지위까지 올랐고 관행상 국가 원수급 대우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1등석을 탄 적이 없었다. 본인 소유의 집도 없었고, 차량도 소박한 차만 고집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돈엔 가난한 나라 분담금도 섞여 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었다

그는 2006년 과로로 쓰러져 결국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의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2019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의료 비상에 걸렸을 때에도 이 전 사무총장의 업적이 재조명된 바 있다. 사무총장 시절, 내부의 반발 속에도 전 세계 전염병 정보를 모으고 즉각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던 장본인이었고, 그 시스템은 코로나19는 물론, 세계적인 의료 위기 속에 빛을 발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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