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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쿡의 애플, 혁신DNA를 파헤치다
NYT 기자, 잡스 사후 애플 10년 취재기
성공적 경영승계까지 전략·갈등 뒷얘기
‘삼성과의 경쟁’ 비하인드도 흥미진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AFP]
애프터 스티브 잡스/ 트립 미클 지음 이진원 옮김/ 더퀘스트

“애플은 내게 일이 아니다. 내 삶의 일부다. 난 이게 너무 좋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천재 사업가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삶의 끝자락에서도 일을 그만두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병가 중에도 회사 간부들을 집으로 불러 끊임없이 혁신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는 이 말을 자주 했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애플은 크게 달라졌다. 에어팟, 애플워치, 애플펜슬 등 새로운 상품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동시에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을 꾀했다. 덕분에 한때 3조 원을 웃돌기도 했다. 잡스가 떠난 후 10배가량 커진 규모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반항아’라고 불렸던 애플이 스마트폰의 왕좌를 지키며 21세기 기술 산업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사실 잡스가 떠난 직후 애플을 둘러싸고 다양한 우려가 있었다. 업계에서는 잡스의 빈자리 탓에 애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잡스의 자리를 이어받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 않았다. 모두의 예상을 깬 인사였기 때문이다.

쿡 CEO는 보란 듯이 우려 섞인 시선을 이겨냈다. 그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재능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는 가장 중요했던 신규 사업인 애플 뮤직 같은 소프트웨어·서비스 판매에 집중했다.

그의 경영 능력은 잡스의 ‘영혼의 동반자’였던 천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아이브는 궁극의 단순함을 추구했던 잡스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크리에이터였다. 그는 잡스 이후 제품 관리의 책임을 맡으면서 창업자 사망 이후 10년 만에 나온 첫 신제품이었던 애플워치를 구상하고 개발을 이끌었다. 쿡 CEO의 경영과 아이브의 창의력이 잡스 이후의 애플을 이끈 셈이다.

그러나 이들 관계도 견고하진 않았다. 한때 화목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무언의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쿡 CEO가 소프트웨어 판매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제품 혁신을 위한 창의적인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다. 결국 아이브는 애플을 떠났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 트립 미클 기자는 신간 ‘애프터 스티브 잡스’를 통해 잡스 이후 애플이 겪은 격동의 10년을 낱낱이 파헤쳤다. 저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4년간 애플의 프로젝트를 취재한 것을 포함해 5년 동안 200명 이상의 전·현직 애플 임직원,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쿡 CEO와 아이브의 어린 시절 지인들까지 취재하며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

저자는 쿡 CEO와 아이브가 애플을 지킨다는 동일한 목표 아래 어떻게 서로 대립하고 협력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관세 문제, 미-중 무역전쟁 등 애플이 겪었던 다양한 위기의 뒷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특히 삼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쿡 CEO가 전전긍긍하며 취했던 전략과 뒷이야기도 담겨 있다. 쿡 CEO가 수장이 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아이폰은 역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다. 당시 애플과 삼성은 특허 분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스마트폰의 왕좌를 무섭게 위협하던 삼성은 토드 펜들턴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의 지휘 아래 엠부시 마케팅(교묘히 규제를 피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애플을 조롱하는 광고를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삼성의 급성장과 파괴적인 광고에 쿡 CEO는 몹시 괴로워했다. 이에 그는 공개적으로 삼성에 대한 악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는 등 전면 대응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강력한 경쟁자인 삼성이 때론 애플을 도와주기도 했다. 아이폰 7의 성공은 사실 삼성 덕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 애플이 아이폰 7와 에어팟을 내놓았을 당시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작에 비해 혁신이 부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중의 부정적 반응은 삼성 덕에 묻혔다. 같은 시기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결함 문제로 삼성에 리콜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 여파로 아이폰 7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스마트폰으로 등극했고, 애플의 주가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는 아이폰의 판매 감소를 예상했던 애플의 내부 전망과는 정반대였다.

잡스가 사망한 이후 애플을 집요하게 따라다닌 질문은 “또 다시 혁신할 수 있느냐”였다. 아이브가 애플을 떠난 지금,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애플은 증강현실 체험기기 ‘비전 프로’의 혁신에 속도를 내야 하고,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 화웨이의 질주도 막아야 한다. 다른 빅테크들이 생성형 AI(인공지능) 시장을 이미 선점한 사이 애플은 최근에서야 캐나다 AI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뒤늦은 반격에 나섰다. 쿡 CEO가 지난 10여 년간 애플을 굳건히 지킨 것처럼 이번에도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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