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가입자망(RAN) 장비 간 연결 방식을 표준화하고 개방하여 네트워크 구축의 유연성을 높인 것이 오픈랜(개방형 무선접속망)이다. 오픈랜 시대가 본격화되면 네트워크 구축 주체는 여러 벤더의 장비들을 조합하여 서비스 특성에 맞는 네트워크 기능을 단시간에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오픈랜은 네트워크 기능의 분리 및 가상화와 함께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을 수반하며, 장비 선택의 자유로움을 넘어 산업 전체의 구조 변화와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대형 벤더 중심의 시장을 대체하진 못하고 있으나, 최근 ETRI ICT전략연구소가 발간한 ‘Open RAN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2027년 오픈랜은 전체 RAN 시장의 2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 시스코, 삼성전자 등은 이미 관련 제품이나 플랫폼을 출시하고 있고 각국 정부도 오픈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여 국가 차원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장비 시장에서 큰 협상력을 갖지 못한 우리에게 일단 오픈랜 확대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분야 경쟁력을 발휘하여 중소기업이 장비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고 특수 목적의 자가통신망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공급할 수도 있다. 통신 사업자도 유연한 망 구성으로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신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오픈랜은 기회가 아닌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CDMA 및 5G 세계 최초 상용화, 5G 가입률 세계 1위 등 이동통신 산업 경쟁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나 시장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선도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할 수도 있다.
기능과 가격에서 앞선 외산 장비들에게 안방 시장을 내주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표준화 및 개방화, 가상화 및 지능화를 지향하는 오픈랜의 특성을 고려하여 오픈랜으로의 흐름에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R&D 관점에서는 오픈랜에 접목할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이 요구된다. 다변화하는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고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능적 네트워크 구성 및 운용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은 통신 등 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오픈랜에서도 지능형 컨트롤러(RIC)가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둘째, 산업 관점에서는 기술 검증을 위한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오픈랜의 한계 중 하나로 기술적 불완전성과 성능 저하를 들 수 있는데, 전 세계 오픈랜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O-RAN 얼라이언스’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테스트와 인증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오픈랜 장비 국제 인증체계인 ‘K-OTIC’를 구축하여 O-RAN 얼라이언스의 승인을 받았으므로 이러한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시장 선도 관점에서는 표준 선점을 위한 국제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개방을 추구하는 오픈랜의 특성상, 우호 세력을 각국으로 확장하여 표준을 주도하는 것이 시장 선도에 유리하다.
현재 정부 주도 또는 기업 간 협력을 통해 해외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나 실증 사업이 진행중이며 이러한 움직임을 지속한다면 표준화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여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CT전략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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