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특유의 굴절된 해석 기제로 왜곡”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내가 뭘 잘못했냐. 하이브는 반성해야 한다.” VS “경영자 자격 없다.”
하이브로부터 ‘경영권 탈취’ 의혹을 받고 있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장장 135분간 울분을 토해냈다. 분통이 터지는 듯 테이블을 내리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반성하라”고 말했다. 뉴진스 멤버들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비속어와 욕설, 반말이 뒤섞였고, 법률 대리인조차 만류해도 “너무 열 받는 포인트라 이야기해야겠다”며 완전히 자신의 독무대를 만들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가 내 입장에선 희대의 촌극같다”며 “나 하나 죽이려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냐”며 모든 것을 쏟아냈다.
민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기 전 하이브는 자회사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계획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사실과 물증을 확보했다며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더불어 민 대표와 신 모 어도어 부대표(VC)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민 대표는 그러나 “경영권 찬탈을 계획한 적도, 의도한 적도, 실행한 적도 없다”며 “며칠간 잠도 못자고 지옥에서 살았다”고 호소했다.
“경영권 찬탈? 무슨 찬탈이라는 건가 싶더라고요.”
하이브가 ‘경영권 탈취 계획’ 증거로 공개한 민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 A씨의 카카오톡 대화록의 내용은 일종의 시나리오였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 대표는 경영진에게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이브를 압박할 방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어도어 내부적으로 아티스트(뉴진스)와의 전속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방법과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 계약을 무효로 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는 것이 하이브의 주장이다.
특히 ‘글로벌 자금을 당겨와서 하이브랑 딜하자’, ‘하이브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해 크리티컬하게 어필하라’, ‘하이브를 괴롭힐 방법을 생각하라’는 대화도 오갔고, ‘5월 여론전 준비’, ’어도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서 (뉴진스를) 데리고 나간다‘와 같은 실행 계획도 담겼다. 하이브는 감사 대상자로부터 “’궁극적으로 하이브를 빠져나간다‘는 워딩은 어도어 대표이사가 한 말을 받아 적은 것”이라는 진술도 확보했다.
민 대표는 그러나 “전 직장인이고 월급 사장”이라며 “직장인이 자기 사주가 마음에 안 들면 푸념을 할 수 있지 않냐. 이 대화가 웃기는 대화인지, 진지한 대화인지 감도 없다”고 말했다. 해당 카카오톡 대화록은 “사담(私談)의 의도적 편집”이자 “노는 얘기”이며, “배우자와 싸운 뒤 한 속엣말 같은 것”이라는 게 민 대표의 해명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어도어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의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파악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임세준 기자 |
지난 달부터 작성, 이른바 민 대표의 ‘하이브 탈출 계획’이 담긴 고소고발, 민사소송, 여론전 등의 소제목이 달린 ‘프로젝트1945’ 문건이 나온 배경 역시 “올 초부터 진행된 주주간 계약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던 중에 예비 차원에서 여러 생각을 담은 메모”라고 변호사 측은 설명했다.
때문에 민 대표는 “내 입장에선 하이브가 나를 배신했다. 자기들 말은 듣지 않아 찍어누르기 위한 프레임으로 느껴진다”며 “사담을 진지한 뭔가로 포장해서 매도하는 의도가 너무나 궁금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엔터 업계 30년 사상 2년 만에 이런 실적을 낸 사람이 없다”며 “(이런 실적을 낸) 계열사 대표를 찍어누르는 것이 배임이라고 생각한다. 난 일을 잘 한 죄밖에 없다”고 했다.
민 대표 측 법률대리인은 “지분율 80%(하이브) 대 20%(민 대표 측) 상황에서 경영권 찬탈은 불가능하다”며 “배임이라면 회사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했을 때 성립하는 것인데, 그런 행위를 기도하거나 실행에 착수한 게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감사권 발동은 그가 했던 ‘내부고발’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하이브 산하 다른 레이블이 배출한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는 “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고 찍어 누르기 위한 프레임”이라고 했으나, 하이브는 해당 자료들을 근거로 민 대표를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25일 고발장을 제출했다.
속사포처럼 거침없이 쏟아냈다. “잠도 못 자서 기자회견 오는 길에 휘청였다”는 민 대표는 단 한 마디도 막힘이 없었다.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기자회견 영상엔 ‘국힙원탑’이라는 댓글까지 달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박지원 하이브 대표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의 일부를 공개, 반격의 카드로 사용했다.
방 의장은 민 대표와의 대화에서 뉴진스 데뷔 과정 중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라고 말하는가 하면, 뉴진스가 지난해 초 ‘OMG’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입성하자 “즐거우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해당 대화를 공개하며 민 대표는 “나는 에스파가 목표가 아니었고 누굴 막 밟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며 “저는 (방시혁이) 부처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표리부동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뉴진스의 빌보드 진입 당시 방시혁으니 ‘즐거우세요?’라는 질문엔 “의도가 이상하게 다가왔다. 어이가 없어서 ‘ㅋㅋㅋ’라고 했더니 ‘왜 웃어요. 진자 궁금한 건데’라고 했다”며 “안 즐거울 리가 없는데 왜 당연한 걸 물어보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저 대화가 좀 이상하지 않냐”며 반문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이 기존과 달랐던 것은 그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보통의 기자회견이라면 최대한 점잖게 갖춰입은 옷차림에 정제된 말투, 자신의 입장을 담은 A4 용지와 함께 했겠지만 민 대표는 옷차림, 말투부터 자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티셔츠에 야구모자 차림으로 한 순간도 막힘없이 머릿속 생각들을 쏟아냈고, 그 와중에 욕설과 비속어가 등장하는 ‘촌평’까지 쏟아내며 ‘희대의 명장면’들도 만들었다.
특히 2019년 하이브 전신인 빅히트뮤직 입사 이후 ‘하이브 첫 걸그룹’으로 민희진 대표, 방시혁 의장,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 등 3자 합작 프로젝트를 설명할 땐 격앙된 감정이 쏟아졌다. 쏘스뮤직 소속 연습생이었던 뉴진스 멤버 민지와 함께 선발한 네 명의 멤버 조합으로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으나 하이브에선 이를 뒤집고 “사쿠라 김채원을 필두로 한 새로운 그룹을 하이브의 첫 걸그룹으로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민희진(가운데)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어도어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의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파악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임세준 기자 |
당시를 떠올리며 민 대표는 “박지원 님한테 ‘너네 양아치냐, 왜 약속을 깨고 내 이름 팔아 민희진 걸그룹이라고 붙였냐’며 쌍욕을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어도어 레이블을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방시혁 님이 지원해줘서 제가 떵떵거리며 레이블 차린 줄 아시죠? 절대 그렇지 않다”며 주먹으로 책상을 ‘탕’ 내리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성 직장인으로의 어려움, 엔터 업계의 험난함을 토로하는 대목에선 속엣말이 모두 튀어나왔다. “내가 실적이 떨어지길 해 뭐를 해. 내가 니네처럼 기사를 두고 차를 끄냐, 술을 x마시냐, 골프를 치냐”, “이 아저씨들, 미안하지만 이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카톡을 야비하게 캡처해 이렇게까지 한다”라든가, “계모와 언니들이 나를 너무 핍박하고 있다”, “넌 지금 우울증 왔지, 난 10년 전부터 우울증이었다”며 속사포 랩을 쏟아냈다. 그는 또 “이게 그냥, 약간 이 업을 하잖아?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시xxx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말해 회견장은 심지어 웃음까지 터졌다.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이 인센티브 50억원을 받았다 하는데 20억원 받았고, 박지원 대표가 10억원을 받았다. 회사가 마이너스가 그렇게 잔뜩 있는데”며 “20억원이 적은 게 아니라 네가 10억이면 난 더 받아야 돼. 회사가 견제만 하고 키워줄 생각을 안한다”라고 했다.
기자회견 직전 논란이 된 이른바 ‘주술 경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하이브에 따르면 무속인은 민 대표와 대화에서 “앞으로 딱 3년간 ‘언냐’(언니)를 돕겠다”며 “딱 3년 만에 기업 합병되듯 가져오는 거야”라고 말했다. 특히 민 대표가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병역 이행에 대해서도 무속인과 의견을 나눴다고 주장했다. 민 대표는 “‘BTS 군대 갈까 안갈까’하고 묻기도 하고, ”걔들(방탄소년단)이 없는 게 나한테 이득일 것 같아서“라고 했다.
게다가 하이브는 어도어 채용 전형에도 이 무속인이 개입한 것으로 봤으며, 민 대표가 방 의장에 대해선 “기본기가 너무 없고 순전히 모방, 베끼기”라거나 “사실 내 것 베끼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하이브는 파악하고 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어도어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파악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임세준 기자 |
민 대표는 이에 대해 “제가 (BTS) ‘군대 가, 안 가’라고 한 것은 뉴진스 엄마 마음으로 물어본 것” 이라며 “BTS가 에이스니까,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활동하는 게 홍보 포인트가 잡히지 않나 해서 물어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것은 개인 사찰이다. 이에 대해 고소할 것”이라며 “법인카드 턴다고 하더니 별 게 없으니 무당 경영이라고 한다. 백날 털어봐야 식대 밖에 안나온다. 배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지인이 무당이다. 무당이 지인이면 안되냐. 무슨 무당이 불가촉 천민이냐”고 소리를 높였다.
긴 시간동안 쌓아온 이야기를 쏟아내며 민 대표는 몇 차례나 ‘마타도어’(흑색선전)라고 언급했다. 그는 “3일 동안 완전 미친x이 됐다”며 “주식 못 받고 쫓겨나도 상관없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해서 집에서 쉬면 된다. 차라리 속 시원하다”고 했다.
하이브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른 저녁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하이브 측은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민 대표는 시점을 뒤섞는 방식으로 논점을 호도하고, 특유의 굴절된 해석 기제로 왜곡된 사실관계를 공적인 장소에서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사는 모든 주장에 대해 증빙과 함께 반박할 수 있으니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일일이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하이브 측은 “민 대표가 ‘대화 제의가 없었다’, ‘이메일 답변이 없었다’는 등의 거짓말을 중단하고 요청한 대로 정보 자산을 반납하고 신속히 감사에 응해 달라”며 “이미 경영자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만큼, 어도어의 정상적인 경영을 위해 속히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소속사인 어도어가 갖은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뉴진스는 예정대로 컴백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민 대표는 이날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연 것에 대해 “뉴진스 음반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이야기하려 했는데, 하이브의 PR(홍보)이 아티스트 PR보다 강도 높게 느껴져 이미 마녀가 돼있었던 것에 대한 프레임을 벗기고 진실을 이야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공개 일정(27일)이 코앞으로 닥쳐 이날로 회견을 잡았다.
이날 민 대표는 뉴진스와의 공고한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뉴진스와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관계 이상으로, 서로 위로받는 사이”라며 “아이들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지 매일 제게 사랑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민 대표에 따르면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뉴진스는 그의 편에 섰다. 하니는 “대표님 너무 힘드시죠, 저 거기 갈게요”라고 했고, “고양이처럼 말도 없는” 해린은 오밤중에 영상통화를 걸어와 민 대표가 밤새 울었다고 했다. 혜인은 “고마운 게 너무 많은데 도와주지 못해 미치겠다”며 20분 간 펑펑 울었다고 전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언급하며 민 대표는 “방시혁 의장이 손을 떼야 한다”고 일갈하면서도 방 의장 측이 대화를 제의한다면 “당연히 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뉴진스는 지금 도쿄돔도 있고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하이브에서) 우리 PC를 뺏어가는 게 말이 되나”며 “이미 연말 플랜까지 세웠는데 하이브는 뉴진스 없어도 된다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살풀이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 민 대표는 하이브의 사임 요구에 대해선 “나도 내 앞날을 모르겠다. 나가라면 나가야지”라면서도 “그럼 뉴진스는 어떻게 하냐. 그래서 이게 이해상충이라는 것”이라고 말하며 회견 장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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