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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최초 멀티 레이블·脫아시아계 그룹…K-팝 미래 예견한 선구안 (2) [K-컬처 위닝스토리]
K-팝 최초의 시도 ‘멀티 레이블’
‘본부제’ 운영 통해 다양한 실험
최대 성과는 트와이스와 스키즈
현지화 3단계, K-팝 확장 전략 정착
中 시작으로 초국적 K-팝 그룹 제작
트와이스 LA 소파이 스타디움 공연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트와이스는 시간을 거스르는 그룹이다. 데뷔 10년차 트와이스의 이름 뒤엔 ‘세계 최초’, ‘K-팝 최초’ 등 무수히 많은 ‘기록’이 따라온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지난 10년간 2001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전 세계 여성 그룹 최초로 미국 소파이 스타디움, NY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 입성했다. 경쟁 엔터테인먼트사에서조차 “어떻게 데뷔 10년차의 걸그룹이 지금도 최정상일 수 있냐”며 놀라워한다.

#2. 스트레이 키즈는 방탄소년단(BTS) 이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팬덤을 확장한 보이그룹이다. 2022년 미니 앨범 ‘오디너리(ODDINARY)’로 K-팝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첫 진입과 동시에 1위로 직행했다. 이후 발매하는 앨범마다 이 차트 정상에 올랐다. K-팝 최초 5연속 ‘빌보드 200’ 1위에 올랐고, 4세대 K-팝 그룹 최초로 일본 4대 돔 투어 매진을 기록했다. K-팝 4세대 보이그룹 최초로 미국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를 수상했다.

트와이스(2015년 데뷔)와 스트레이 키즈(2018년 데뷔)는 JYP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투톱 아티스트다. 두 그룹은 K-팝 업계에 무수히 많은 최초, 최고, 최다의 역사를 쓰고 있다. 이 성취의 근간엔 탁월한 선구안과 혁신이 자리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JYP는 K-팝사에서 한 번도 일등을 한 회사는 아니지만 건실한 재무 구조를 바탕으로 건강한 성취를 일궈온 엔터테인먼트사”라고 했고,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안주하지 않는 실험과 도전으로 다양한 성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JYP 2.0’의 선언…韓 최초 ‘멀티 레이블’ 구축

JYP가 강동 사옥으로의 이전을 2주 앞둔 지난 2018년 7월, ‘제2의 도약’을 위한 과감한 ‘첫 스텝’이 시작됐다. 박진영 JYP 수장이 ‘JYP 2.0’을 발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한 것. 경영자이자 프로듀서였던 박진영 원톱 시스템에서 벗어나 ‘멀티 레이블’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의 가요기획사들이 구축해온 제왕적 경영, 프로듀싱 시스템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K-팝 최초의 ‘혁신’이었다.

‘Z를 위한 시’ , ‘갈등하는 케이, 팝’을 쓴 대중음악 전문가인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K-팝의 규모가 커지며 하나의 기획사가 자사 아티스트의 성장 속도와 시장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한계를 갖게 됐다”며 “JYP는 일찌감치 프로듀싱과 경영을 분리했고, 동시에 여러 아티스트가 활동할 수 있도록 소규모 레이블 체제를 구축한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K-팝이 동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유럽으로 확장한 현재, 산업을 효율적으로 이끌 ‘묘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7년만 해도 국내 대중음악계에선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체제였다. 당시 박진영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A&R(아티스트 & 음반 기획·제작), 안무 등 각 부서별로 업무를 분담하는 방식으로는 아티스트가 커가는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트와이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18년 본격적인 ‘프로덕션 체제’를 구축하기에 앞서 지난 2015년부터 JYP에선 트와이스의 데뷔와 함께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오직 트와이스의, 트와이스만을 위한, 트와이스에 의한 ‘전담팀’을 꾸려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성과는 1년 만에 나타났다. 2016년 ‘치어 업(CHEER UP)’과 ‘TT‘가 한일 양국을 발칵 뒤집은 것이다.

트와이스의 성과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JYP 주가는 한 동안 ‘마의 1만원 장벽’ 앞에 멈춰서 있다 트와이스의 대박과 함께 지난 2017년 9월 사상 처음으로 1만원대에 진입했다. 주가가 트와이스와 함께 단숨에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2018년 1월엔 1만6000원을 기록, 시가총액이 5500억원을 넘어서며, 2011년 이후 6년 만에 YG를 넘어섰다. 2018년 8월에는 시총 1조원을 돌파, 당시 업계 1위의 SM과 ’양강체제‘를 구축했다. 2018년은 트와이스가 일본 4개 도시에서 첫 아레나 투어를 열었던 해다.

박진영은 트와이스와 함께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창작자의 다양성’을 꼽는다. 그는 이전 시기를 돌아보며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운영되게 하고 싶었다. 원더걸스와 비 등 그동안 JYP 소속 아티스트의 곡은 모두 내가 써왔는데 어느 순간 문득 ‘곡을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 구축한 것이 2008년 설립한 JYP퍼블리싱이다. 박진영이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CO)로 있는 JYP퍼블리싱에선 홍지상, 심은지, 이우민, 레인스톤 등 30여명의 작곡가들이 소속, 차세대 창작자를 배출하고 있다. 트와이스는 박진영 프로듀서의 곡으로 데뷔하지 않은 첫 그룹이다.

스트레이키즈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트와이스의 성장 경험을 토대로 JYP는 본격적인 ‘레이블 체제’로 돌입했다. 현재 JYP 내엔 총 5개의 본부(아티스트 1본부, 2본부, 3본부, 4본부, 스튜디오J)를 두고 있다. 각 본부에서 소속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프로덕션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각 본부마다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각각의 본부에서 창발적 아이디어가 솟구쳐 K-팝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본부제’ 도입 이후 JYP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특징 역시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각 본부마다 다양한 색깔과 실험이 나오게 된 것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과거 박진영 총괄 프로듀서 체제로 음악을 만들 땐 JYP만의 음악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스타일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개별 본부마다 음악색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창작의 자율성이 보존, K-팝계에서 가장 새롭다고 평가받을 만한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셉추얼한 스타일을 꾸준히 밀어붙이는 엔믹스, 소위 ‘마라맛’이라고 불리는 강렬한 색깔을 유지하는 스트레이 키즈, ‘아이돌 밴드’로의 독보적 위치를 점한 데이식스, 헤비한 록을 지향하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은 JYP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팀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본부에선 꾸준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아티스트 1본부(2PM, 스트레이키즈, 니쥬, 넥스지)의 최대 성과는 단연 스트레이 키즈다. 2018년 3월 데뷔한 스트레이 키즈는 JYP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그룹이자, K-팝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그룹이다. 지난해 6월 발매한 ’★★★★★ (5-STAR, 파이브스타)’는 발매 1주일 동안 461만7499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 K-팝 초동 1위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과 세븐틴이 세운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스트레이 키즈의 약진으로 JYP의 시총은 지난 2022년 2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2023년 4월엔 3조원, 5월엔 4조원 등으로 치솟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19일 발매한 미니 앨범 ‘에이트(ATE)’는 써클차트에서 누적 판매량 300만 장을 돌파했다. K-팝 그룹의 앨범 판매량은 해당 그룹의 견고한 팬덤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숫자가 공연 티켓은 물론 각종 MD(기획 상품) 판매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다만 모든 본부가 트와이스(아티스트 3본부), 스트레이 키즈와 같은 성취를 내는 것은 아니다. JYP는 명실상부 ‘걸그룹 명가’를 자부, 원더걸스·미쓰에이·트와이스 등 각 세대별 걸출한 걸그룹을 배출해왔다. 하지만 엔믹스는 그룹의 독창성, 탄탄한 실력과는 별개로 4세대 걸그룹 시장에서 뉴진스, 아이브 등 타 그룹과 온전한 경쟁 구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규탁 교수는 “엔믹스는 그룹의 역량 측면에서 다른 그룹보다 부족할 것이 없는데 기존 JYP가 취했던 ‘대중성’에서 탈피해 믹스팝 등의 트렌디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독자 노선을 가졌다”며 “타기획사와 차별화된 전략이었던 대중성을 찾지 못한 것이 4세대 K-팝 시장에서의 아쉬운 지점”이라고 진단했다. 정민재 평론가는 “과거의 JYP가 대중성을 우선하면서 대중 지향의 음악을 바탕에 둔 실험을 이어왔다면 현재는 엔믹스, 니쥬, 비춰 등 주력 아티스트를 통한 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전환된 상태”라고 봤다.

비춰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보이스토리·니쥬·비춰…‘K’ 뗀 K-팝 그룹의 실험

평균 나이 13세, 6명의 소년들이 중국에 등장했다. 그룹명 보이스토리다. JYP에서 내놓은 ‘K(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의 시초였다. 보이스토리는 JYP와 중국 텐센트의 합작 회사인 신성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이다. 당시 선발된 여섯 멤버는 JYP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뒤 중국에서 데뷔, 현지 QQ뮤직차트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박진영은 2018년 ‘JYP 2.0’을 발표하며 K-팝 현지화 3단계 전략을 공유했다. 1단계는 K-팝과 K-팝 아티스트 등 한국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 2단계는 해외의 인재와 한국 아티스트를 조합하는 것, 3단계는 해외 인재를 육성, 프로듀싱해 현지화 그룹을 제작하는 전략이다.

2단계의 대표 사례 다국적 그룹의 형태를 볼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 최초로 태국인 멤버 닉쿤을 영입한 2PM을 시작으로 2세대 K-팝 그룹 시장엔 본격적으로 외국인 멤버가 속한 그룹들이 속속 자리매김했다. 2PM에 앞서 SM에선 중국인 멤버가 포함된 슈퍼주니어가 데뷔했다. 3세대 시장으로 접어들면 다양한 외국인 멤버가 영입된 사례가 많아졌다. 일본, 대만 멤버가 포함된 트와이스, 태국인 멤버 리사와 함께 전 세계를 호령한 YG의 블랙핑크 등이 대표적이다.

니쥬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지금은 바야흐로 3단계의 시대다. 당시만 해도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의 제작은 도전의 영역이었지만, 202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현지화 전략이 글로벌 시장을 향한 중요 확장 비전 중 하나가 된 것이다. JYP에선 보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9인조 걸그룹 니쥬(2020)를 선보이며 일본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니쥬는 데뷔와 동시에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고, 컴백 때마다 이 차트의 왕좌에 자리하고 있다.

김도헌 평론가는 “현지화 그룹은 잘 되지 않을 거라고 보던 시기에 전원 일본인 그룹 니쥬를 보란 듯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이후 올해는 니쥬의 ‘보이그룹 버전’인 넥스지와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을 넘어 비춰(2024)와 같은 탈아시아계 K-팝 그룹까지 세계 무대에 내놨다.

지난해엔 비춰의 데뷔기를 담은 미국 걸그룹 서바이벌 오디션 ‘A2K(America2Korea)’가 흥행하며 당시 JYP의 시장 가치까지 껑충 뛰었다. A2K는 박진영이 애틀랜타, 시카고, 뉴욕, 댈러스, LA 등 북미 5개 주요 도시 오디션을 진행하며 ‘소녀들의 데뷔 과정’을 담은 콘텐츠다.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약 6575만뷰를 달성했다.

A2K가 공개된 지난해 7월 JYP 주가는 사상 최고가인 14만원을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JYP에선 남미 시장 진출을 예고, 라틴계 K-팝 그룹 데뷔 프로젝트인 ‘L2K(LatinAmerica2Korea)’를 준비 중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을 통한 현지화 전략의 시도와 평가는 당분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다만 이러한 실험과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간다는 것은 JYP의 태생이 안주하지 않는 회사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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