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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가 국경을 넘을때…다나카와 가베지, 뉴진스님[서병기의 문화와 역사이야기]
박서준 일본 팬미팅.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글로벌 시대에 콘텐츠의 해외 진출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최근 배우와 가수들의 일본 진출 집중 현상은 특기할만하다고 할 정도로 일본 팬미팅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배우 박서준은 지난 8월 23일 도쿄에서 1만1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팬미팅을 성료했다. 박서준의 일본 팬미팅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종영 직후 가진 대다수 팬미팅 사례와 달리, 데뷔 13주년을 축하하는 팬들을 위해 개최한 스페셜 이벤트였다. 물론 박서준은 일본에서도 리메이크된 2020년작 '이태원 클라쓰'이 방송된 이후부터는 신드롬급 인기를 유지 중이어서 추가 좌석까지 긴급 오픈했다.

이렇게 해도 박서준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일본팬들의 아쉬움이 커지자 후지TV의 OTT 플랫폼 FOD에서 생중계까지 하며 일본 전역에서 TV로도 팬미팅을 지켜보게 했다. 박서준은 이들에게 화답하듯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퍼스트 러브(First Love)' 커버곡을 선보여 일본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조인성도 지난 7월 15일 쿨 재팬 파크 오사카에서 ‘2024 Joyful Day with Zo In Sung’을 개최하고 일본 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김수현은 지난 6월 22일과 23일 일본 요코하마 '피아 아레나'에서 열린 팬미팅을 전석매진 시키며 인기를 증명했다.

위하준도 데뷔후 첫 팬미팅인 '위하준 아시아 팬미팅'을 도코(8월 25일), 오사카(8월 27일)에서 열어 일본팬들과 특별한 날을 보냈다. 최진혁은 오는 10월 12일과 14일 양일간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시작으로 아시아투어를 개최한다.

일본어 버전 싱글을 발매한 가수 JD1(정동원).

가수 JD1(정동원)은 '에러 405(ERROR 405)'의 일본어 버전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는 등 지난 1일 10일간의 일본 프로모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그룹 엔싸인은 8월 31일 일본 요코하마 분타이에서 데뷔 1주년 기념 팬미팅 'Happy 1st Anniversary Fan meeting '1&SSign' in JAPAN'을 열고 글로벌 팬들을 만났다.

걸그룹 아이브는 지난 17일 일본 오사카 만박기념공원과 18일 도쿄 ZOZO 마린타운 & 마쿠하리 멧세 무대에서 개최된 일본 최대 음악 페스티벌 '서머소닉 2024' 무대에 올랐다. 9월 4일과 5일에는 일본 도쿄돔 공연도 연다.

그룹 트레저는 지난 7~8월 두번째 일본 팬미팅 투어 '2024 TREASURE FAN MEETING~WONDERLAND~'를 개최한데 이어 일본 지상파 드라마 주제가 가창자로 낙점돼 지난 7월 시작한 일본 TV아사히 금요 심야드라마 '전설의 캡짱 쇼우'의 주제가 'REVERSE'를 불렀다. 데뷔 15주년을 맞아 재결성된 2NE1은 11월과 12월 고베와 도쿄에서 공연한다. 소녀시대 출신 최수영도 10월 26일 도쿄 에비스 가든 홀에서 솔로 데뷔 쇼케이스를 연다.

한·일공동제작도 붐을 이루고 있다. 남궁민과 박은빈이 열연한 2019년작 SBS 인기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일본판으로 제작된다. SBS미디어그룹의 드라마 제작·유통 전문회사 스튜디오S는 일본 NTT도코모, 요시모토흥업의 JV(합작법인) NTT Docomo Studio&Live와 지난 8월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BCWW 2024'에서 '스토브리그' 일본 리메이크 드라마의 공동 제작 및 사업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일본 드라마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일본에서 리메이크 되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채널A도 8월 29일 일본 컨텐츠제작사인 포니캐년(PonyCanyon)과 드라마 '체크인 한양' 공동제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포니캐년은 1966년 창립 이후, 음악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판매해 온 일본 후지 미디어 홀딩스 산하의 기업이다. 한국 기업과는 처음으로 사극 공동제작에 나섰다.

▶일본에 간 연예인과 일본에 안간 연예인

최근 몇년간 요즘처럼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요즘 한국 연예인들은 일본에 간 배우와 가수, 일본에 안 간 배우와 가수로 나눠질 정도로 양국간 교류가 잦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 건 대중문화 마케팅의 기본상식이지만, 일본 시장이 열렸을때 무작정 나가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좀 더 세밀하게 문화 콘텐츠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일본 한류는 욘사마 현상을 낳은 '겨울연가'(2002년작)이후 일본인이 선호하는 콘텐츠는 간간이 나왔지만 지속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드라마 내용으로나, OST로나 크게 성공한 '아이리스'(2009년작)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인이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지레짐작으로 기획해 '한류드라마'라고 하며 내놓는 바람에 스스로 기획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후부터는 일본 방송에서 한국 콘텐츠는 오랜 기간동안 사라졌다. 현재 일본에서의 K-콘텐츠붐은 5차한류에 해당한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K드라마 소비를 주축으로 4차 한류가 일고 있었다. '사랑의 불시착' '사이코지만 괜찮아' '이태원 클라쓰'는 주로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인에 의해 향유되면서, 일본에서는 플랫폼 편중때문에 진정한 한류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K-콘텐츠의 일본내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범위가 확대되면서, 2020년 7월 16일 아사히 신문이 1면에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드라마의 일본내 인기 현상을 중심으로 4차 한류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4년 방송되면서 글로벌 히트한 '눈물의 여왕'이 일본 넷플릭스를 강타하자 일본 매체들이 "제 5차 한류 열풍을 견인하다"고 보도했다.

'눈물의 여왕'

이와 함께 최근 일본 진출과 교류 붐을 더욱 당긴 건 올초 일본 민영방송국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 출연한 한국 배우 채종협(윤태오 분)이 단숨에 일본여성들을 사로잡은 '횹사마 신드롬'이 생기면서부터다. 그 후부터 일본은 반드시 가야 하는 시장이 됐다.

하지만 이제 일본에서 몇차 한류인지를 규정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굳이 차수로 구분하지 않아도 한국콘텐츠는 일본 시청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킬만한 내재적인 요인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한류문화를 좋아하는 Z세대 사이에 한본어(韓本語, 일한믹스어)와 한국 화장품이 유행하면서 한류 콘텐츠에서 다른 분야까지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진출에서 가져야 하는 문제의식…양국의 속도감이 다르다

지금 시점에서는 한국 연예인과 제작자들이 일본에 진출한 이후 양쪽이 함께 가는데 있어 중요한 지점들을 숙지해야 할 때다. 일본은 우리와 변화의 속도감이 다르다. 우리는 빨리 변하고, 일본은 늦게 변한다. 반면 일본의 팬덤은 한국보다 훨씬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일본 TBS에 근무하는 차현지 프로듀서는 지난 27일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방송영상마켓 'BCWW2024' 콘퍼런스 '일본, 다시 뜨거워지는 K-콘텐츠' 세션에서 "한국에서는 가능성이 있는 사안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반면 일본에서는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은 꼼꼼하게 본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트렌드를 놓칠 수 있다"면서 "시의적인 콘텐츠를 일본과 협의할 때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시의적이기만 한 주제보다는 보편적인 주제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기획으로 제안해주면 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령, 일본 드라마 '아이러브유'에는 윤태오(채종협)와 모토미야 유리(나키아도 후미)의 풋풋하고 트렌디한 로맨스가 있지만 태오는 멸종위기 동물 해달(락코)을 연구하며 동물과 환경을 전공한 한국인 유학생이며, 모토미야 유리는 벨기에 국왕이 아프리카 노동자를 착취해 만든 초콜릿이 아니라, 폐기되는 카카오로 초콜릿과 커피를 만드는 친환경 기업 '돌체 앤 초콜렛'의 사장이라는 설정을 깔고 있다. 이는 시의성을 초월한 보편적인 주제다.

한국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생긴 양극화와 빈부격차, 계급갈등 등이 K-콘텐츠가 외국인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강력한 소재가 되고 있다. 한국은 좁은 면적에 인구가 5천만명이 넘기 때문에 대중문화 소비처로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 한국문화는 감정의 진폭이 커 역동성까지 지니고 있다.

반면 1억2천만여명의 인구를 가진 일본은 대중문화 소비처로서의 매력은 있지만 내수 시장에 주력하면서 글로벌 콘텐츠와 스타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이문원 문화 평론가는 "일본은 유행이 빨리 바뀌지 않는다. 일본은 취향이 잘게 나눠져 있어 큰 유행은 잘 바뀌지 않는다. '도라에몽'이 나온 지 5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지금도 인기다"고 말한다. 어쨌든 글로벌 시장에서는 소재가 다양하고 변화가 빠른 한국 콘텐츠가 차별점이자 경쟁력 확보에서는 유리한 면이 있다.

이어 방송국과 플랫폼의 생태계도 양국간 차이가 있음을 참고로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출연료 상승, 제작비 상승을 이끌고 있다. 동시에 지상파와 케이블 등 사용자의 개입이 최소화된 리니어 미디어(Linear Media)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 제작비의 급격한 상승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차 프로듀서는 "일본 TV 방송국은 공영방송 NHK와 후지 테레비, 닛폰 테레비, 테레비 아사히, TBS 테레비, 테레비 도쿄 등 민영 5개사가 '키국'(キー局)으로 불리며, 한국 지상파 같은 영향력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 민영 5개사가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은 OTT나 유튜브 플랫폼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런 방송사가 다수의 시청자들이 1차적으로 접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이어서 아직 OTT가 완전히 침투하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3억원~6억원선밖에 되지 않는 등 한국 드라마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본은 주연배우의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25%를 넘지 않는데, 한국은 50%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제작자들은 제작비의 50%가 출연료로 지출되면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드라마의 홍보방식은 한국이 더 디지털화돼 있다. TBS 멜로 드라마 '아이러브유'는 일본 방송에서 흔하게 활용하지 않았던 독특한 마케팅 방식을 사용해 큰 재미를 봤다고 한다. Z세대를 겨냥해 밈(meme) 전략을 활용하고 유튜브 클립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촬영장에서 비하인드 촬영을 해 내보내는 홍보전략을 써, 정작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일본의 젊은 층이 그것들로 스토리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영훈 일본비즈니스 센터장은 "한국의 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공연을 하기위해 또는 팬미팅을 하러 일본에 온다. 하지만 팬미팅도 1만명 이상 확보하지 못하면 애매한 면이 있다"면서 "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문화는 쌍방향이 중요한데 일방향이 오래 지속돼왔다. 우리도 일본드라마를 채널J뿐만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플랫폼에서 보여주면서 교류의 폭을 넓혀나갈 때다"고 조언했다.

▶문화가 국경을 넘어갈때-다나카, 가베지, 뉴진스님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교류하게 되면 문화할인율(Cultural Discount)이 생긴다. 문화할인율이란 문화상품이 일단 국경을 넘어가면 이질감으로 인해 자국에 비해 소비자의 호응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지만 많이 다르다. 특히 개그는 드라마와 대중가요 등 타 장르에 비해 문화할인율이 높은 편이다. 문화할인율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가 활성화되면 더욱 고려해야 하는 개념이다.

다나카라는 예능인은 불과 1~2년전만 해도 TV나 행사장 단골 게스트였다. 다나카는 한국 코미디언이 일본에 가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다 악덕고용주의 정산갑질에 시달린 캐릭터다. 한국인이지만 국경을 넘어온 캐릭터일뿐만 아니라 캐릭터 속성이 한국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베지팀.
가베지팀.

9월 1일 막을 내린 제1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BICF)에 출전한 일본 요시모토 오와라이 쇼팀의 공연은 한국인이 보기에도 문화할인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였다. 가베지(GABEZ)와 이누(DOG) 웨스P(WES-P)는 각자의 마임, 근육 개그, 테이블 빼기 등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관객 앞에 나섰다. 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가까이 소통하며 웃음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개막식 갈라쇼에 출연한 틱톡 1200만 팔로워의 인플루언서 웨스P의 테이블 빼기는 신체의 특정부위를 활용해 적응되지 않았지만 본 무대에서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제를 모은 픽토그램 마임의 주인공인 가베지팀은 박수 하나만으로 10분 이상 관객을 흥겹게 만들고 웃겼다. 불편함과 거부감 제로의 일본 마임 개그였다.

뉴진스님.

제12회 부코페 개막식 직후 열린 갈라쇼에서는 요즘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뉴진스님의 무대가 개막식 분위기를 달궜다. 뉴진스님은 EDM 장르의 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리믹스 음악을 직접 디제잉하면서 랩은 철학이 담긴 불교 교리를 접목시켰다.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고 잘 안된다고 낙담하지 말라!" "제행무상!(impermance)" 수시로 외치는 이런 말들이 은근히 중독성을 유발하며 관객을 일어나게 했다.

요즘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DJ 윤성호는 가장 핫한 예능인이다. 행사장 무대와 클럽을 오가느라 바쁘다. 트로피컬 하우스, 테크노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흥'을 책임진다. 시간당 억원대의 행사비를 챙기는 알렌 워커와 체인스모커스, 카이고 등 EDM신의 레전드 디제이, 프로듀서들과의 차별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는 말레이시아에 이어 싱가포르에서도 불교계 반발에 가로막혔다. 부산에서 만난 윤성호는 "승복을 입고 장삼을 착용하면 항상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런 뉴진스님이 일본에서 활동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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