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구축·평화 의지 없는 통일은 상대에 대한 공격”
“수구 냉전 시대로 회귀…최소한 소통장치 마련 시급”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양근혁 기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19일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며 통일 논의는 평화를 구축한 뒤 미래 세대에 맡길 것을 제안했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불가역적인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에 대한 범국민적인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통일, 하지 맙시다”라는 말로 기념사를 시작한 임 전 실장은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기자”고 말했다.
이어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분명히 말한다.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다.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에 대한 지향과 가치만을 헌법에 남기고 모든 법과 제도, 정책에서 통일을 들어내자”며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국민의 상식과 국제법적 기준, 객관적인 한반도의 현실에 맞게 모든 것을 재정비하자”고 제안했다.
임 전 실장은 또한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언급했다. 그는 “1991년 남과 북이 UN에 동시 가입해, 남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독립국가로 주권을 행사하게 됐다”며 “이런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영토 조항은 그 자체로 모순일뿐더러 북한과 관련해 각종 법률 해석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 그리고 평화롭게 협력하면서 오순도순 살아보자”고 주장하며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이 전제돼있으므로 인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 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인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 전 실장은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며 “상대에 대한 부정과 적대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통일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복속시키겠다는 공격적 목표”라고 짚었다.
이어 “신뢰 구축과 평화에 대한 의지 없이 통일을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격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추구해 온 국가연합 방안도 접어두자고 제안한다”며 “국가연합론이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전제로 한다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남북이 통일 논의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두 개의 국가 상태를 유지하며 남북이 협력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 지평을 한반도 전체와 동북3성까지 확장하는 동북아 단일경제권, 동북아 일일생활권을 우리의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면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목표와 현실적 접근이 공감을 얻는다면 남북이 신속하게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통일은 우리 세대의 선택지가 아닌, 미래 세대의 권리”라며 “충분히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간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와 협력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다음에 통일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관리됐던 평화는 오간 데 없고, 이제는 ‘전쟁 가능한 세상’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주변 상황을 2000년 이후에 최악의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넣으며 수구 냉전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곳곳에서 커져만 가고 있다”며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안전장치라도 마련하기를 충심으로 조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