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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 총장, 국회의원, 대사’ 경험 살려 지역발전 이끌 것”
[인터뷰] 내년 총선 출사표 양형일 전 엘살바도르 대사
‘청바지에 푸른넥타이’ 젊은 70대 “나이는 숫자 일 뿐”
미국, 영국, 일본 등 70~80대, 조화와 협치로 국정운영
교수, 대학총장, 국회의원, 외교공관 수장. 한번도 얻기 힘든 타이틀 4개를 모두 보유한 양형일 전 엘살바도르 대사를 22일 광주에서 만났다.

[헤럴드경제(광주)=황성철·서인주 기자] “얼마전 한국과 축구 친선경기를 펼친 엘살바도르에서 대사로 일했습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침체 등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나라 밖에서 겪다 보니 한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게 됐죠. 결국 정치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교수, 대학총장, 국회의원, 외교공관 수장. 한번도 얻기 힘든 타이틀 4개를 모두 보유한 양형일 전 엘살바도르 대사를 22일 광주에서 만났다.

청바지와 푸른색 셔츠, 짙푸른 넥타이로 코디한 양 전 대사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엘살바도르의 푸른 하늘을 닮아 보였다. 카키색 그의 수첩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마다 기록된 메모로 가득했다.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인다’

해외공관에서 3년을 보내며 한국을 공부하고 이해했다. 정치가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을 볼모로 잡고 극심한 정쟁은 끊이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내년 총선에 도전장을 내민 배경이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나이가 많은 것 아니냐”, “올드맨의 귀환”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뷰를 위해 다소 불편한 질문들을 날 것으로 쏟아 냈다. 그는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답변했다.

[일문일답]

▷ 2019년부터 엘살바도르 대사를 지내다 올초 귀국했다.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나?

= ‘인구 651만, GDP 세계 105위’. 한국과 15시간 시차가 있는 엘살바도르의 주요 지표다. 지구 반대편 이름마저 생소한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는 우리에게 모든 게 낯설고 이국적인 나라다. 이른아침 대지를 붉게 물들게 하는 일출은 엘살바도르를 대표하는 수식어인데 이때 많은 영감을 얻었다.

14년 가량 해외에서 머물렀다. 미국, 일본, 영국에서 공부하며 현대사에 눈을 뜨게 됐다. 특히 대사로 일하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올초 귀국해 그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 친구,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밖에서 본 한국을 주제로 한 책도 집필중이다.

엘살바도르 일출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볼거리로 알려졌다. 지난해 그는 출판기념회와 사진전을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엘살바도르 아이들 돕기에 보탰다. 사진들은 그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최근 엘살바도르 3년을 정리하는 책을 내고 사진전을 열었다. 수익금 전액을 뇌성마비 고아들을 위해 현지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엘살바도르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며 귀한 인연을 맺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에 아픈 아이들이 치료 받지 못해 버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로. 이른 아침 카메라를 들쳐 매고 엘살바도르의 하늘과 구름, 도시를 앵글에 담았다. 중남미의 생활상과 문화, 아름다움 풍경은 ‘아름다운 나라의 슬픈 미로’라는 책을 낸 이유다. 올 초 광주에서 출판기념회 겸 사진전을 열었는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수익금 모두 엘살바도르 뇌성마비 환우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시설로 보냈다. 낙후 시설 보수 뿐만 아니라 부족한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 내년 총선에 나온다고 들었다. 결심하게 된 배경은

= 외국에서 보니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과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더라. 대사다 보니 각국의 정보와 이슈를 매일 보고받고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가 가장 큰 문제였다. 정치가 기쁨과 선물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런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다. 여러 고민 끝에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됐다. 지금까지 받은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각오다.

▷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2014년 교육감 선거에 도전했다. 10여년간 정치일선을 떠나 있었는데 민주당이나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보나?

= 솔직히 아픈 대목이다. 정치권에 오래 머문 것이 정치인 또는 개인에게 바람직하다고 만 볼 수 없다. 이게 구태와 악습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을 떠나 있는 동안 객관적이며 냉철한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백은 오히려 저를 단련하고 경륜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비워보고 내려놓고 보니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또 살고 있는 토박이다. 선거때 바람을 타고 잠깐 등장하는 외지인이 아니다.

▷ 51년생으로 알고 있다. 세간에는 올드보이라는 평이 있다.

= 72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요즘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즐겨 듣는다. 70대는 일하기 좋고 사랑받고, 사랑하기도 좋은 시기다. 희노애락을 수없이 겪어왔고 역경을 이겨내 온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가진 세대다. 이런 자산이 사장된다면 국가적 사회적 손실이라 생각한다.

실제 UN에서도 연령기준을 과거와 달리 해석하고 있다. 단순히 나이가 많고 적음을 긍정적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현대사회에 맞지 않은 기준이다. 열정, 의지가 중요하지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 상원의원 가운데 70대가 무려 34명이다. 영국에서는 83세 의원이 현역으로 뛰고 있고 70대도 다수다. 이제 시대흐름에 맞게 정치 지형도 변해야 한다.

양형일 전 대사는 내년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해외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지역발전에 녹여내겠다는 각오다. 그의 카키색 수첩에는 빽빽한 메모로 가득했다. 서인주 기자

▷ 그동안 지역사회 발전과 공헌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지역은 장래가 없다. 대학교수, 총장, 20년 넘게 교육에 종사했다.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데 노력했다. 조선대 총장으로 일하며 대학은 물론 지역민을 위해 캠퍼스도 아름답게 꾸려갔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조선대 장미원도 그렇게 만들어 졌다. 대학공원화 사업이라 명칭을 붙였는데 상아탑 뿐 아니라 시민, 평생교육, 힐링, 사색 즐길 수 있는 캠퍼스를 지역과 공유하자는 취지다. 국회에서도 4년을 보냈다. 의정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입법, 예산, 재정지원 확보, 지역개발사업 등 뒤처지지 않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육성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도록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선순위에 밀린 KTX 광주노선을 조기에 완성한 것도 성과로 기억된다.

▷ 광주는 현재 초선 국회의원들이 대부분이다. 정치구도에 대해 한말씀 부탁한다.

= 초선, 재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대한민국 정치는 호남과 영남의 양대산맥이었다. 현재는 실질적으로 영남만 남게됐다. 과연 광주에 호남정치가 존재하는가?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건 오롯이 정치인들의 몫이다. 격을 높이고 광주정치의 기본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인물을 키워야 한다.

양형일 전 엘살바도르 대사는 수십년간 지역인재를 길러왔고 총장과 국회의원, 외교공관장을 역임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다.

▷ 광주발전을 위해 원로로서 조언 한말씀 부탁한다.

= 아직 원로가 아니다. 현역이다. 실력이라는 게 어느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적과 축적이 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 한사람의 인재가 만들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연마해 왔다. 대학교수, 총장, 국회의원, 대사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지역사회 발전에 녹여 내겠다.

▷ 건강하게 보인다. 평소 건강관리는?

= 부모님께 전적으로 감사하다. 재산을 물려준 것은 없는데 인간의 올바른 삶의 길을 제시해줬다. 건강한 몸도 물려 주셨는데 이게 젊음의 원천이 되고 있다. 시간이 날때마다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 개인적으로 사모님께서 총선에 대해 반대가 많다고 들었다.

= 집사람은 교육자 집안 출신으로 가정적이며 소박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부부라도 의견이 다 같을 수 없다. 저는 항상 남자로서 외향지향이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비교적 소박하고 조용히 살기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일단 결정하고 추진할 때는 늘 존중해 줬다. 이번에도 격려하고 성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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