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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 인터뷰>나무에 스민 시간에 말걸기 혹은…
한국 조각 세계화 리더 심문섭
베이징·파리에도 작업실

잇단 해외전시 ‘미술계 홍길동’


中 원전미술관 개인전

사용하던 가구 등 재활용

일상-예술 경계 허물어


공기·관객시선까지

작품의 한 부분으로



서울, 통영, 베이징, 그리고 파리. 조각가 심문섭이 작업실을 두고, 오가는 도시들이다. 전(全) 지구가 무대이자, 작업현장인 셈이다. 30~40대 작가도 아니고, 칠순을 목전에 둔 작가의 보폭이라곤 믿기 어렵다. 국내 조각계를 대표하는 ‘만년 청년작가’ 심문섭을 신년 특별인터뷰로 만나봤다.

“회화에 이우환이 있다면 조각엔 심문섭이 있다”,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작가”로 꼽히는 조각가 심문섭(68). 그는 요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세계를 바삐 누빈다. 전시도 해외 전시가 훨씬 많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의 원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1월 25일까지)을 개막했는가 하면, 오는 5월에는 파리에서 사진작품만을 모아 개인전을 갖는 등 해외전시가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조각계에서 ‘이단아’, ‘반(反)조각’으로 불렸던 이력답게 요즘도 그는 새로운 작업에 골몰해 있다. “선배들이 갔던 길을 답습하는 건 체질이 아니어서”라고 되뇌는 심문섭은 이번 베이징 원전미술관에서의 작품전에서도 신작들을 대거 선보였다. 


‘the Presentation’이라는 부제의 이번 전시에는 실생활에 쓰이던 가구를 재활용한 작품이 여럿이다. 그가 1980~90년대 시도해 국내외에서 크게 인기를 모았던 ‘목신(木神)’시리즈에서 두세 발짝 더 나아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작업들이다.

재개발로 헐린 베이징 가옥들의 대들보며 기둥이 그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다. 목전주 모양의 대형기둥 18개를 일렬로 세운 작업이 대표적인 예. 그런데 그중 1개의 기둥에는 아뿔싸, 바퀴가 달려 있다. 꼼짝도 안 할 것 같은 육중한 나무기둥들이 이 바퀴 때문에 움직임을 품고 있다. ‘질서 속 자유’라고나 할까. 눈 밝은 이가 아니면 발견하지 못할 파격. 연적의 한 귀를 살짝 비틀었던 우리 선조들의 그 파격을 떠올리게 하는 ‘변주’다.

한약방의 약장처럼 대형 구조물을 만들고, 검게 옻칠을 해 낯선 성채도 만들었다. “인간이 쌓은 구축물의 역사를 조망해봤어요. 획일적인 현대의 도시 풍경 같은 걸.”

그런가 하면 네온, 철망, 비닐, 대나무 등 공기와 바람이 통하는 가벼운 재료를 끌어들인 작업도 있다. 대단히 이질적인 소재들이 만나 새로운 충돌을 보여주는 작품도 나왔다. 배처럼 누워 있는 나무기둥에 대나무가 꽂혀 있고, 신문지 뭉치와 돌을 한 덩어리로 묶은 광섬유가 빛을 내고, 커다란 바위 사이의 구멍에선 물이 흐른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소재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을 시(詩)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심문섭의 작업은 인공과 자연을 무시로, 가뿐히 오간다. 물성과 장소가 갖는 시간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함께 녹여내 ‘상상이 살아 숨쉬는 세계’로 밀고 나간 게 그의 작업이다. 

중국 원전(元典)미술관 초대전 출품작 앞에 선 조각가 심문섭. 재개발로 헐린 베이징의 전통가옥의 목재를 활용한 설치작품 ‘재현’은 육중한 나무기둥 18개를 세운 후, 그 하나에 바퀴를 달아 정지와 움직임, 질서와 자유를 표현했다. 왼쪽 작품은 통영이 고향인 작가의 혼이 잘 반영된 대표작 ‘현전’.                                                                                                 [사진제공=갤러리604]

“쓰였던 나무엔 시간과 문화가 묻어 있게 마련이지. 오브제, 즉 물질 스스로가 얘기를 하거든. 내가 최대한 덜 개입돼 그것들이 말을 하게 하는 거야.”

이렇듯 자연의 핵심적 요소인 나무, 물, 하늘 등을 그대로 차용해 자연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는 것이 심문섭 작업의 핵심이다. 그 열린 시도는 그의 ‘시 조각’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그의 근작들은 전통적인 조각이라기보다, 설치작업이나 개념미술에 더 가깝다. 나무와 쇳덩이도 만나는데 충돌이 아니라 또 다른 메타언어를 만들어낸다.

서울대 조소과 재학 때부터 두각을 보였던 심문섭은 국전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회의장상, 김세중 조각상,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 훈장 등 상복도 많은 편이다. 또 한국 조각의 세계화를 이끌어온 리더답게 파리, 상파울루, 시드니, 카뉴, 베니스 등 국제 비엔날레에 연이어 참가했으며, 각종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도 한국 대표로 참여해왔다. 2007년에는 프랑스 문화성 초청으로 파리 팔레 루아얄 공원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조각이라기엔 너무나 자연에 가깝고, 자연물로 보기엔 너무나 조형적이다. 바로 그 점이 해외로부터 호평받게 하는 요소다. 프랑스 문화부 국장을 역임한 올리비아 케플랜은 “그동안 세계는 미국, 영국 등 서양 미술에만 주목해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심문섭은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중앙대 교수직을 퇴임한 뒤 더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국제미술은 전쟁터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늘도 예술에의 새로운 항해를 위해 또다시 돛을 드리우고 있다.

글ㆍ사진=이영란 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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