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붕괴가 혼란과 분열로 발현
문제근본 해결 못하면 재발 불가피
대립과 갈등 해소할 새체제 필요해
서기 189년 동탁이 중국의 권력을 장악한다. 중국 역사상 군벌의 첫 집권이다. 당시 동탁은 이민족과의 전투, 황건적 소탕, 반란 진압으로 꽤 유명했다. 전공은 크지 않았지만 부하들과 의리가 깊어 따르는 병사가 많았다. 당시 국정을 농단하던 십상시(十常侍) 견제를 위해 외척인 대장군 하진(何進) 지방 군벌들을 중앙으로 소집하자 가장 먼저 응해 정권을 장악한다. 고대 정치 군인의 전형이다. 군벌 시절부터 동탁은 탐욕스럽고 상관의 지시를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漢) 역사에서 4대 역적으로 꼽히는 망탁조의(王莽・ 董卓・曹操・司馬懿) 가운데 고대 폭군의 전형을 보여준 유일한 인물이다.
※ Chat GPT에서 임의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동탁은 수도였던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거처를 옮긴다. 황건적의 난으로 이미 국고는 텅 빈 상황이었다.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켰고 미오(郿塢)라는 성채를 짓기 위해 엄청난 수탈을 한다. 동탁의 집권 기간은 고작 3년 남짓이었지만 그가 저지른 악행은 역대급이다. 오죽하면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에서 동탁을 “사람이 비뚤어져 계통이 없고 잔인하고 포학하며 비정했으니,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이래로 이와 같은 자는 아마 없었을 것(董卓狼戾賊忍 暴虐不仁 自書契已來 殆未之有也)”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192년 5월 동탁을 죽인 것은 경호실장격이자 양자였던 여포(呂布)다.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벌어진 결정적 계기는 여자다.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정을 통한 후 이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하던 끝에 암살을 단행한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시녀 대신 초선(貂蟬)이란 창작 인물로 각색됐다.
동탁이 집권에 성공한 배경에는 한나라의 권력 관리 실패가 있다. 황건적 진압 과정에서 지방에 군권을 허용해 중앙 집권이 약해졌다. 환관과 외척 간 권력 다툼에 군대가 동원된 점은 결정적 악수(惡手)다. 권력 다툼을 위해 일종의 비상계엄을 선언한 것인데 결국 전투 병력의 실제 통제권을 가진 군벌들에게 권력을 내어준 꼴이 됐다. 동탁이 죽은 후 중국은 군벌들의 경쟁 시대로 접어든다. 내전과 혼란이 계속되며 국력이 약화되고 결국 외부 세력의 침략을 허용한다. 남북조 시대다. 동탁에서 수나라의 중국 통일(589년)까지 중국의 혼란은 무려 400여년간 이어진다. 이후 중국 통일 왕조의 절반(隋・唐・元・淸)이 선비, 몽고, 여진 등 이민족 혈통이다.
동탁 사후 중국이 혼란에 빠진 이유는 수습의 실패 때문이다. 동탁이 죽은 후에도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가 한동안 권력을 누린다. 왕망에 의해 무너졌던 전한을 복벽한 광무제 같은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다. 황실의 일원인 유표(劉表)와 명문세족 출신인 원소(袁紹)도 이각과 곽사를 어찌하지 못했다. 이후 한 황실은 조조에게 넘어가고 이에 반발해 손견(孫堅) 등 신흥 군벌이 각지에서 부상한다.
동탁의 실권 이후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진짜 이유는 민심을 얻을 수 있는 혁신의 실패에 있다. 삼국지의 주인공들도 구체제로의 복귀만 추구했다. 서진은 수명이 다한 봉건제에 의지하다 고작 40년만에 무너진다.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어 남북조시대라는 혼란을 겪는다. 혼란을 수습할 새로운 지배구조는 수나라 때 만들어진다. 귀족과 호족, 외척과 환관이 좌우하던 정치가 과거(科擧)로 선발된 관료에 의해 이뤄진다. 과거제 실시 이후 중국은 분열되지 않고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한다. 산업혁명 전까지 중국의 왕조는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이어간다. 문제(文帝) 양견(楊堅)이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양건 이후 중국의 체제를 송두리째 바꾼 인물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전제정치 시대의 막을 내린 쑨원(孫文)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가 혼란스럽다. 경제의 거울인 증시는 글로벌 투자자는 물론 국내 투자자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경제의 또다른 얼굴인 정치는 갈등, 분열, 대결로 점철되며 45년만의 비상계엄 사태와 3번째 대통령 탄핵까지 이르렀다. 중요한 순간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것은 우리 국민들의 힘이었다. 경제와 정치의 지배구조에서 이미 드러난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같은 문제에 다시 봉착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국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경쟁력 있는 새로운 질서를 먼저 만들어야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 국민들의 힘이 하나로 모였을 역사의 수레바퀴 방향을 바꾸기 쉽다. 바로 지금이다. 어떤 방향으로 향할 지,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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