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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엄-콘서트홀은 이제 파티장?... ‘아트파티’ 인기몰이
박물관, 미술관, 클래식 공연장에서 치르는 격조 높은 ‘아트파티’가 떠오르고 있다. 호텔 등에서 이뤄지던 파티가 뮤지엄 등으로 옮겨가며 이제 뮤지엄과 콘서트홀은 ‘파티 명소’로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아트파티는 딱딱한 식순이나 ‘알코올 난장’으로 이어지는 행사를 무섭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송년회도 ‘지난 한 해를 잊자’보다는 ‘문화를 즐기며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자’는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엄과 갤러리에는 품격 있는 아트파티를 열고 싶다는 장소 대여 문의가 빗발친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는 지난해 11~12월 기업의 대관 요청 횟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배나 늘었다.

이 같은 ‘아트파티 붐’은 G20 서울정상회의가 촉발시켰다. 당시 서울에 도착한 각국 정상들은 가장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에서 환영 리셉션과 공식 만찬이 진행됐기 때문. 국립박물관은 발 빠르게 한국을 대표하는 마스터피스, 즉 명품 문화재 12점을 정상들의 이동 선상에 배치했다. 만찬장에도 신라 금관 등 화려한 문화재 2점을 설치했다.
정상들의 배우자 만찬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져 또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는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서 개최됐다. 이 파티는 ‘단순한 화려함을 능가하는 문화적 품격과 향기가 돋보였다’는 평이 잇따라 나왔다.

그러자 ‘우리도 저렇게 근사한 뮤지엄파티 한번 해보자’는 의견이 기업과 정부에서 앞다퉈 나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G20 만찬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박물관에서도 이런 파티를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점잖은 관람뿐 아니라 멋스런 파티도 할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생겨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원칙적으로 박물관 전시실에선 파티를 할 수 없어 정중히 거절하고 있으나 박물관을 그저 ‘유물의 무덤’쯤으로 여기던 종전 인식에서 크게 달라진 셈.

올 초 정부의 신년인사회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것도 화제를 모았다. 콘서트홀 특유의 운치와 문화광장의 밤 풍광이 파티 분위기를 한층 돋워주었다는 후문이다.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음악회도 관람하고, 나눔 모금도 했다. 
최근 들어 서울시 등 각 지자체도 아트파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수원시도 시무식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고,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음악회로 새해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예술, 나누다’를 주제로 ‘2011 예술지원 정보박람회’도 열었다. 예술단체나 문화기업들을 대상으로 파트너를 찾는 일종의 ‘일’이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어 행사의 품격이 더해졌다.

예술의전당 홍보팀 정다미 씨는 “이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의 파티가 예술 공간에서 열리는 것은 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앞으론 아트파티가 더욱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다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들 스스로도 문턱을 낮추고 행사 유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은 G20 이후, 공연예술단체에만 대관되던 극장 용을 기업들에 열어주기로 했다. 공연을 관람한 뒤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형식의 아트파티 장소로 제공하겠다는 것. 박물관문화재단이 기업에 극장의 문호를 개방하기로 한 건 G20 이후 기업의 대관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왕소영 국립중앙박물관 공연예술팀장은 “최근 들어 국내외 기업들로부터 아트파티 등의 대관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예술의전당도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968㎡ 규모의 식음료 공간 ‘푸치니바’를 열었는데, 리셉션, 세미나, 기업 이벤트 등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관할 계획이다. 기업 행사 전체를 공연장 시설 내에서 진행하는 것은 관련 규약과 심의 탓에 쉽지 않지만, 공연 단체관람에 이은 리셉션과 파티는 얼마든지 허용할 방침이다. 공연장 내에 식당이 없는 경우 로비를 활용한 행사 진행도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지난 2008년 단일 갤러리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건물을 신사동에 오픈한 갤러리현대 강남은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기업의 행사와 파티를 유치하고 있다. 특별히 전시가 없는 기간에 넓은 공간을 대여해 자동차업체, 패션 및 뷰티업체, 주얼리 브랜드 등에 공간을 대여하고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호텔 연회실에서의 행사와는 달리, 멋스런 조각이며 현대미술품이 포진한 곳에서 행사를 개최해 반응이 한결 좋다고 귀띔했다.

아트파티에 나서는 기업들도 다양하다. 에스티로더의 스킨케어 브랜드 라메르는 한국 출시 10주년 기념 파티를 지난달 강남의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에서 열었다. 파티에는 현대무용단 공연 관람이 포함됐다. 대림산업은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아동복지센터 아동 초청 행사 ‘행복선물 & 문화나눔’을 열기도 했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브랜드 자체의 레벨이 높거나, 기업들이 VIP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품격 행사의 경우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아트파티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아트파티’ 트렌드는 외국 상류층 사이에선 이미 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특히 뮤지엄 파티는 세계 패션계의 대세다. 미국 패션계의 가장 큰 행사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디자이너와 모델, 유명인이 운집하는 갈라파티는 매년 뉴욕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인 보그지 편집장 안나 윈투어와 딸 비 셰퍼가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셰퍼는 메트로폴리탄 파티에 참석해 ‘프라다 입는 악마의 딸’로 지목되며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방시, 샤넬, 에밀리오 푸치 등 유명 럭셔리 패션업체들은 VVIP 파티의 장소로 박물관을 선택해 브랜드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리곤 한다. ‘메트’뿐만 아니라 뉴욕 MoMA(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는 수시로 아트파티가 열리곤 한다. 이 파티에는 막강한 자선가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열쇠를 거머쥔 기업인과 금융계 등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서로 메세나(문화후원)를 협약하고, 은밀한 상류층 네트워크를 형성하곤 한다.

이처럼 아트파티는 딱딱한 식순에 의한 획일적인 파티와는 달리 문화예술 공간에서 문화예술의 세례를 한껏 받으며 열린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또 자극적이지도 않은 은은한 문화의 향기가 행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것도 아트파티의 확산을 부르는 요인이다.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층과 기업 등을 중심으로 이처럼 아트파티가 확산되는 것은 ‘파티와 행사의 시공간’이 보다 확대되고, 소비지향적이 아닌 창의적인 파티가 확산된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일이다. 아울러 전시 및 공연 관람이 파티와 함께 이어진다는 점도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보람 인턴 기자, 임희윤 기자/boram090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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