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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가 그린 자화상> 에디강 강석현.. 상처와 치유의 내러티브를 담다
태어났을 때부터 주인에게 버림 받아오다 결국 유기견이 된 작은 강이지가 내 삶에 들어온 건 2003년 봄이었다. 걸음이 서툴고, 유난히 털이 꼬불꼬불했던 그 작고 흰 강아지는 그 후 내 인생에 많은 추억과 영감을 남기고 2008년 가을, 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창 사람 손을 타야 할 시기에 버려졌기 때문인지 녀석은 처음 엄청난 경계심을 보였다. 마르티스종 특유의 애교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난폭한 성향마저 보였다. 버림받은 주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으면 저럴까? 유기견과의 생활에 익숙했던 나와 가족들은 이 녀석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안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특히 나는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녀석과 보냈다. 그러자 녀석의 꽁꽁 얼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난폭하고 예민했던 성향은 사라지고, 차츰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우리 가족은 행복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슬픔이 찾아왔다. 녀석이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 결과 나온 최종 판정은 어릴 적 받았던 충격으로 뇌에 물이 고였다는 것이고, 앞으로 길어야 넉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마음을 연 녀석인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여리고 귀여운 캐릭터 속에 이입시켜 스토리텔러처럼 들려주는 강석현의 신작 ‘Masked’. 애처러운 눈망울의 강아지와, 그 위에 얹혀진 마스크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 소외와 사랑을 거쳐 마침내 치유와 안식을 얻은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 석현 作 ‘floaters’. 혼합재료 위에 렌티큘러. 64x64cm. 2010. 사진제공=갤러리 인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녀석을 살리기 위해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것. 그러나 수술 후 우리 품에 다시 돌아온 녀석은 보고 듣고 짓는 능력을 모조리 상실한, 완전 백지상태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녀석을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그러자 녀석은 차츰 상태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녀석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언제나 입을 꼭 다문 모습의 상처 입은 강아지 ‘Loveless’가 바로 녀석이다.

이 작은 짐승의 감정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 미묘했고, 넉달 밖에 살지 못할 거란 의사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생명력 또한 강인했다. 그렇게 녀석은 5년을 묵묵히 버텨주었다. 자신을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던 우리 가족을 위해 버텨준 거라 생각한다.

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작은 강아지와의 교감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순수했던 존재가 버림을 받으며 극단으로 피폐해지는 모습에서부터, 감정이 가지는 신비한 힘, 사랑을 통해 회복되는 모습까지. 이렇듯 작은 짐승도 상처를 어루만져줄 치유와 사랑이 필요한데 하물며 인간은 어떨 것인가.

요즘 내가 그리는 ‘Loveless’는 더 이상 화난 표정이 아니다. 이제는 저 하늘나라에서 녀석이 평온하리라 믿으며, 언젠가 다시 만날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린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에서 나는 인간을 보고, 나 자신을 본다. 



화가 강석현(31, 에디 강)은 미국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영상, 에니메이션, 비디오를 전공했다. 최근까지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서 4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강석현은 자신의 추억을 모티프로 작업한다. 스스로를 임상실험하기도 하고, 치유놀이를 하며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스토리텔러처럼 펼쳐내는 것. 그가 하나둘 탄생시킨 귀엽고 사랑스런 캐릭터들은 전시가 거듭되면서 종류와 역할이 늘어 현재 16가지에 이른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개별로도 존재하지만 끊임 없이 이종교배되거나 접합되며 즐겁게 증식된다. 오늘도 살갑게 마주보는 응시를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각박한 삶에 따뜻함을 뭉클 전해준다. 강석현의 작품은 서울 팔판동 갤러리인에서 ‘스토리텔러’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개인전(2월17일까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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