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아트토크’서 관객과의 대화…아티스트 전준호
매 작품마다 날선 의식물신주의·허세에 일침
실향민 임진각 제사 보고
통일 문제 건드리기 시작
“대중은 내 작업의 뿌리”
“모든 이들이 죄다 똑같은 가치만 추구하는 시점에서 다른 가치를 슬쩍 내보이는 게 예술의 몫 아닐까요? 어쩌면 비현실적인 것, 다음 세상을 만들 때 초석이 될 수도 있는 몽상적인 걸 제시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죠.”
독특한 아이러니가 담긴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전준호(42)가 대중을 지근거리에서 만났다. 청중을 불과 1m쯤 앞에 두고, 미술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자신의 20년 작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것. 전준호는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이 기획한 ‘루이비통 아트토크(Art Talk)’의 두 번째로 작가로 선정돼 지난달 말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통섭’을 주제로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2층에 전시된 제 영상작업 보셨죠? 북한 화폐, 미국 달러에 내러티브를 입힌 작업인데 평도 좋았고 ‘돈작가’라는 닉네임도 얻었어요. 그런데 ‘돈작업’, 이제 그만하려고요. 반응이 좋다고 반복하면 고인 물처럼 썩을테니까요”라고 했다.
이 같은 말처럼 전준호는 영상, 설치, 평면, 조각 등 미술의 전 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새로운 작업을 쏟아내고 있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전혀 궤가 달라 비평가들을 놀라게 한다. 지난 2008년 파리 루이비통에스파스에서 ‘변형’이란 타이틀로 열린 그룹전에 한국의 정치, 사회현실을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한 영상 설치작품 ‘형제의 상’을 내놓았던 작가는 이후로도 날선 비평의식이 살아있는 작업들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특히 물신주의, 허세 등에 침을 놓길 즐긴다.
작가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표현하기 위해선 그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며 심각하고도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거나, 간명하게 표현하곤 한다. 전준호 작업의 강점은 자신의 개념을 세련된 이미지로 절묘하게 압축해 낸다는 점. 또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인간사 보편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아 세계성도 획득하고 있다.
작가는 “내 작업은 늘 작은 단초에서 시작된다. 실향민들이 임진각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통일의 문제를 건드렸고, 종교가 어느 나라보다 막강한 세를 몰아가지만 인간이 황폐해지는 현실에 착안해 미라 조각을 제작했다. 대중과 사회는 내 작업의 뿌리”라고 전했다.
현대사회와 인간의 삶에 감춰진 이면을 꿰뚫어 온 작가 전준호가 일반 대중과 오붓하게 만나‘ 아트토크’를 펼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
그는 이번 아트토크에서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어머니와의 아픈 추억도 공개했다. “2004년 ‘작업에 전념하겠다’며 잘 다니던 대학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그런데 막막했다. 게다가 5년째 암을 앓으시던 어머니는 머리까지 암이 번지셨다. 힘든 병수발에 지친 나(외아들)는 도망치듯 베이징으로 떠나, 중국전시에 내놓을 작품을 미친듯 제작했고 개막도 하기 전에 작품이 솔드아웃됐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백화점에서 값비싼 모자며 코트를 사드렸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더라. 아!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사드린 모자며 코트를 그대로 남겨두신 채 이튿날 돌아가셨다”고 고백했다. 그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은 작가는 ‘언젠가 어머니에 대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지막히 덧붙였다.
아트토크 말미에 관객들은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왜 이념적 작업에 몰두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더러 정치현실을 많이 다룬다고 한다. 뭐 그렇게 보는 것도 자유겠지만, 나는 신념, 이념 그런 거보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과 그 사회를 그릴 뿐”이라고 답했다.
한편 루이비통의 아트토크는 지난 2006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미국 아시아로 확산되며 채프맨 형제, 아니쉬 카푸어, 리차드 프린스, 장환 등 당대 가장 논쟁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참여해왔다. 한국에선 지난 3월 김혜련 작가와의 아트토크 이후 두 번째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