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자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돈 이야기만 하고 살다가 돈 문제로 싸우다 죽었다면 누가 믿을까. 그는 귀족집안의 자제이며,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먹고살만한 재능과 유산 또한 상속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체계적이며, 철저하게 절약을 실천했던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살아갔다.
유산을 받아쓰고, 빌려 쓰고, 그러면서도 한방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은 그를 대책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그의 출세작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같은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 그는 돈에 대해 지겹게 탐닉하면서도 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탕진해버리는 이중적 행동을 일삼는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 고려대 교수인 석영중씨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무척 재밌다고 해서 신바람이 난 김에 바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컨셉은 불멸의 명작을 쓴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오늘날의 독자가 보는 눈으로 그를 얘기하자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이 심오하거나, 거창하거나, 철학적이고 예술적일 거라 긴장하고 보지 말기를. 잘 보면 이렇게도 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가 얽혀있구나 뒷골목 탐색같은 느낌으로 읽으면 족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비 패턴은 독특해 공병학교 때부터도 과시용으로 사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청구서로 귀결됐다. 이 재능은 이후에 돈을 빌리는 편지에 유감없이 발휘 되어 도스토예프스키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빌려주지 않고 배기기 어려웠다고.
재밌는 건 뚜르게네프와의 관계다. 뚜르게네프에게 당장 굶어죽을 것처럼 100탈러를 빌려달라 해서, 50탈러를 받아 쓴 그는 한 달 후에 주겠다는 약속을 어긴다. 그것도 부족해 그를 찾아가 온갖 분노와 비웃음을 토한다. 아무리 봐도 여유롭고 귀티나는 그가 역겨웠나 보았다. 그것도 부족해(뚜르게네프에 대한 분노의 표현은 항상 부족했다.하하) 자신의 작품에 뚜르게네프가 분명한 인물을 설정 15쪽에 걸쳐 천하고 얍삽한 작가로 만들기도 한다.(116쪽)
아쉬운 건 그가 자신이 다이아몬드 광산임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의 작품을, ‘내용보다는 기교로 갈고 닦아 포장해서 내놓은 뚜르게네프의 작품에 비교하는 일’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였을 터였다.(231쪽) 어쨌거나 도스토예프스키는 11년 후에 50탈러를 이자도 없이 생색내며 그에게 던지듯 갚아줘 버린다.
당시 톨스토이나 뚜르게네프가 인쇄용지 한 장당 500루불을 ‘앉아서’받은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쫓아다녀가며‘ 50루불, 100루불씩 받다가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야 겨우 300루불을 받을 수 있었다. 선불로 받은 원고료는 한 방에 술값으로, 전처의 건달 아들을 위해, 죽은 형을 대신해서 형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날아가기 일쑤였다.
다행히 천사같은 두 번째 아내 ‘안나’를 만나면서 그의 도박도, 불안정한 자산 관리도 자리를 좀 잡게 된다. 결국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평생 빚진 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안네는 그런 남편을 평생 말할 수 없이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녀는 남편을, ‘거지를 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사람, 굶어죽을 지경이라도 자신의 기준에 들지 않는 작품은 과감하게 폐기해버린 사람’으로 기억한다. 스물 다섯 살이나 어렸던 아내지만 그에겐 모든 걸 품어주는 어머니요, 누나요, 현실적인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여인이기도 했다.
‘삶의 모든 1분이, 삶의 모든 순간이 인간에게는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무인 것입니다.(중략) 오, 내가 누구든 무엇을 했든 간에! 기필코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알아야 하고, 매 순간 어딘가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완전하고도 평온한 행복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282쪽)
이 환희에 찬 독백은 한 농가의 오두막에서 마신 보드카 덕분이다. 5코페이카어치를 주문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양이 많았던 거다. 그는 단박에 행복해져서 농부와 그의 아내에게 권하고 장광설을 늘어놓을 정도로 아주 낙천적이 되었다. 이는 그가 돈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계속 말하는 데도 웃음이 실실 나오는 원인과 관련있지 않나 싶다.
모든 작품에서 돈을 다룬 그는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그가 돈을 통해 궁극적으로 내는 결론은 ‘행복’이라는 것이다.(337쪽) 겨우 상투적으로 ‘돈이 다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 그 천재적인 작가가 평생 돈에 천착했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그는, ‘돈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지만 돈의 부재 역시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고 한다. 부자가 다 악당이 아니듯이 가난한 사람이 다 성인군자는 아니다.‘(338쪽) 그는 돈을 잘 이해했고, 읽었고, 돈을 절실히 원하는 동시에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놀라운 건 그를 포함, 그의 가족은 언제나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남겨준 건 돈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였다. 그의 죽음 또한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부귀영화를 누린 톨스토이의 고통에 찬 임종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꽤 깊이 있지만 노변정담(爐邊情談)같은 얘기를 들려주던 석영중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슬쩍 던진다.
“굳이 교훈을 얻고 싶다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살면 망한다.’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