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떨기 속에 붉은 줄기/ 꽃은 소담하나 향기는 넘치네(綠玉樷紫玉條/幽花疎淡 更香饒)". 기암괴석 사이로 아름답게 핀 난초를 날렵하고도 단아하게 그려낸 소호 김응원은 ‘석란도’에 달필로 이같은 시를 써넣었다.
“맑은 바람, 곧은 절개(淸風壹節)”. 세찬 바람 속 꼿꼿한 대나무를 호방하게 표현한 해강 김규진의 ‘풍죽도’에 달린 제사(題辭)다.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과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두 사람은 구한말 개화기를 풍미했던 서화가다. 난(蘭)과 죽(竹)에서 최고봉이었던 이들의 그림은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세도가들 사이에 인기가 꽤 높았다. 그러나 요즘 현대인에겐 저들의 이름이 매우 낯설다. 작품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 미술계에서 근대미술, 특히 근대서화(書畵)는 천덕꾸러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가 임진년 첫 전시로 ‘소호(小湖)와 해강(海岡)의 난죽(蘭竹)전’(11~2월 19일)을 마련해 주목된다. ‘사군자 전시라니 좀 고리타분하겠군!’하고 전시장을 들어서면 산뜻한 전시 디스플레이와 달라진 액자 등이 “아, 난죽이 오늘의 미감과도 썩 잘 어울리네"하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출품작은 소호 20점, 해강 13점, 합작품 1점이다.
이번 전시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蘭竹)을 통해 한국 근대기 서화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됐다. 난죽은 개화기 지식인의 표상이자, 새로운 미학이었다. 특히 깊은 숲 속에 나는 ‘난(蘭)’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은은한 향을 뿜는다는 점에서 곤궁함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 군자와 닮아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소호 김응원(1855-1921)은 이같은 난을 빼어나게 묘사했다. ‘당대 최고’로 꼽혔던 석파 이하응(대원군)의 석파란을 계승한 그는 ‘소호란(小湖蘭)’이란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석파와 화풍이 매우 유사해 한 때 ‘석파의 대필화가’로도 활동했던 소호는 석파에 비해 난엽이 가늘고 단아해 한결 예리하다. 석파의 난이 온갖 정치풍상을 겪으며 그 지난했던 세월이 응축된 탓에 ‘조선왕조를 통틀어 최고의 난’으로 꼽힌다면, 서예에도 능하고 기본기 또한 튼실했던 소호의 난은 단정하고 매끄럽다. 때론 친일적이라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묵법에 있어서도 석파는 먹의 농담에 변화를 주어 원근감을 살린데 비해, 소호는 난의 위치와 관계없이 일정한 묵색을 여유롭게 사용했다. 이같은 기법은 후대 묵란의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석파가 추사 김정희의 난법인 사의란(寫意蘭:대상의 형태 보다 그 의미에 치중한 난그림)에 가까와왔던데 반해 소호는 사생란(寫生蘭)에 더 가까운 편이다.
한편 ‘죽(竹)’은 그 사철 푸르름이 군자의 절개에 비유돼 변치않는 가치를 상징하고, ‘평안’의 의미도 지닌다. 묵죽화는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 전(全)시기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세황, 이정, 신위가 묵죽에 뛰어났고, 근대기에도 이름을 날린 묵죽화가들이 많다. 근대의 묵죽화는 보다 감각적, 장식적으로 변모했는데 그 선두에 섰던 이가 해강 김규진이다.
소호 보다 13살 연하였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은 조선시대의 묵죽을 더욱 발전시켰는데 특히 굵은 ‘통죽(筒竹)’에 능했다. 근대 우리 화단에 통죽이 크게 유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시대 묵죽과 다른 구성, 다른 기법이 근대 화가들을 매료시켰던 것.
이번 전시에 나온 10폭 짜리 ‘월하죽림도’는 해강의 역량이 집대성된 역작이다. 화면 가득 굵은 통죽을 호방하게 그려넣은 뒤,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을 자유분방하게 곁들여 역동적인 화면효과를 살렸다. 보름달 아래 죽순이 힘차게 뻗어올라오며 상서로운 기운을 한껏 머금고 있는 것도 멋스럽다. 줄기는 중간먹으로 그린 후 농묵의 가느다란 선으로 죽간을 표현한 것도 돋보인다. 한쪽으로 날리는 짧은 댓잎으로 세찬 바람의 느낌을 표현하는 해강의 기법은 이후 고암 이응노 등에게 폭넓게 영향을 끼쳤다.
우찬규 대표는 "우리네 삶이 난향처럼 향기롭고, 대바람처럼 평안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근대미술 자료가 좀 더 많이 찾아지고, 연구돼 더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뜻에서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우리 미술계에서 현대미술, 특히 서양 트렌드를 따라가는 산뜻한 미술이 선호되지만 현대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건 아니지않는가. 우리도 중국처럼 전통을 다시 돌아보고, 거기서 뿌리를 찾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해강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중국 작가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의 그림이 지난해 베이징 경매에서 718억원에 팔렸다. 이는 작년 세계경매계 최고 낙찰가다. 해강의 작품은 아무리 비싸도 2억원을 넘지 않는다. 근대 서화가 중 대나무 그림 중 최고봉인데도 말이다. 자신들의 전통을 귀히 여기고, 이를 제대로 조명하려는 중국에 비해 우리는 우리 옛 것을 너무 소홀히 여긴다"고 안타까와 했다.
소호와 해강, 두 사람은 뛰어난 작품을 남긴 예술가인 동시에 격동의 시대에 서화학교 창설에 앞장서는 등 교육및 전통의 현대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그동안 거의 평가되지도, 조명되지도 않았다.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중에서 근대 서화를 본격적으로 컬렉션한 곳도 거의 없다. 특히 김응원의 경우는 예술적 성취에 비해 연구가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에 소장됐던 소호와 해강의 작품을 국내에 들여와 선보인 이번 전시는 근대 서구미술과 서화가 공존했던 개화기 서화가들의 예술혼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근대서화의 양식과 당시 시대정신 또한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무료관람. 02)720-1524
<이영란 선임기자> /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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