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미술관’선정까지 머나먼 길…전문·독립·효율성 미흡한 국내미술관 운영의 허와 실
‘크리에이티브 파워’ 강조하며미술관 관련예산은 쥐꼬리
제대로 된 전담기관조차 없어
투명한 시가평가·방식도 부재
시가100억짜리 미술품 기부땐
개인 세금공제 고작 10억 수준
예술인프라 구축도 국가 책무
‘창의력 원천기지’인식 가져야
연초 세계 최대의 가전쇼 CES를 찾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은 힘이 빠진 것같고, 중국은 시간이 좀 걸리니 상상력, 창의력을 활용해 힘있게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는 창의성, 곧 ‘크리에이티브 파워’가 향후 기업 성장의 관건임을 강조한 말이다.
산업 뿐만이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현대인의 삶 전(全) 분야에서 화두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은 뛰어난 인재가 됨은 물론, 사회통합을 이끌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창의력의 뿌리는 어디일까? 바로 문화예술이다. 그중에서도 미술이다. 최고의 아트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은 그 핵심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은 무역교역량 12위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100대 미술관(Art Newspaper 조사, 이중 18개는 전시관)에 단 1개의 미술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이 뉴욕MoMA,구겐하임미술관 등 18개, 영국이 14개, 프랑스가 7개, 스페인과 호주가 각 6개, 일본이 4개, 심지어 아일랜드, 터키도 100대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으나 우리는 조사기준을 충족할 만한 유명 미술관이 단 1개도 없는 실정이다.
뉴욕, 파리를 찾으면 MoMA며 오르세미술관을 꼭 관람하는 한국인도, 정작 고국에선 미술관과 담을 쌓고 지낸다. 국립미술관에 피카소 그림이 한 점도 없으니 국민 탓만 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해 미술단체들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미술관 문화와 미술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작년 말 한국미술산업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양질의 미술관과 그 미술관이 보유한 작품(콘텐츠)은 공공재이자, ‘국민 모두의 것’인 만큼 국가적 지원이 매우 시급하다는 판단에서 한국미술협회, 전업미술가협회, 민족미술인협회, 미술평론가협회, 큐레이터협회, 화랑협회 등이 뜻을 모은 것.
(위부터) 영국 British museum, 프랑스 Louvre, 일본 Tyoko national museum, 호주 Art allery of new southwales, 스페인 Museo del prado, 러시아 Tretyakov gallery |
협의회는 현재 국내 미술시장은 소규모 개인소장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시장규모가 너무 작고, ’미술관급 미술품 유통’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저 예쁜 꽃그림 같은 장식적인 그림이 주로 거래될 뿐이라는 것. 또 미술관도 외국 유명미술관과 비교할 때 콘텐츠(컬렉션)가 현저히 취약하고 운영의 전문성과 독립성, 효율성이 낮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몇몇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곤 공공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콘텐츠 보강이 시급하다는 것.
협의회는 “영국, 미국, 프랑스의 미술산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수십년간 미술관 문화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전담기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창의력의 근간인 미술을 육성하려면 미술관산업을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 예산만으론 국공립 미술관이 양질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만큼 개인과 기업의 작품 기부를 적극 유도하는 구조를 갖춰야한다고 밝혔다.그러나 현실은 좋은 그림을 기부하고 싶어도 절차가 복잡하고, 세금감면 혜택도 쥐꼬리에 그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프랑스의 경우 미술품 기부절차 및 가격평가 시스템이 투명하게 확립돼 시가 100억원짜리 그림을 국공립 미술관에 기부할 경우 개인은 약66억, 법인은 약60억원의 세금을 공제해준다. 반면에 한국은 100억원짜리 그림을 기부해도 개인은 10억~20억원, 법인은 6억~10억원의 세금을 공제받을 뿐이다. 작품의 시가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데다, 혜택이 적어 기증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것.
협의회 측은 “도로, 철도, 항만, 교육, R&D 인프라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게 국가의 책무이듯, 높은 수준의 미술인프라 구축 또한 국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선 미술관이 양질의 작품을 보유하고 좋은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럴 경우 연관 산업과 타 예술산업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오며, 부가가치가 높은 시각산업, 관광산업까지 발전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국가전략 산업으로 ‘미술관 산업’을 지정하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며, 정부의 감독과 지원하에 미술관산업을 총괄하는 독립적 기관인 ‘미술산업위원회(가칭)’를 설립해 미술관을 전문적, 체계적, 지속적으로 감독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미술관 수준을 체계적으로 높이기위해 ‘인증미술관’ 제도의 도입도 제안하고 있다. 아울러 백남준 같은 미술관 작가(뮤지엄 아티스트)를 키우고 미술관급 미술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제도의 시행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미술관을 그저 작가및 애호가들의 공간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산업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창의력의 원천기지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한국이 경제대국에서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기부 등을 통해 미술관들이 양질의 작품을 다수 보유하게 하고, 미술관급 작품이 활발히 거래되는 미술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