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작품마다, 벌이는 이벤트마다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명성을 구가 중인 ‘현대미술계 악동(惡童)’ 허스트는 이번에 평면작업인 스팟(spot) 페인팅,일명 땡땡이 그림을 들고 신년 블록버스터 쇼를 펼쳤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화랑인 가고시안 갤러리는 미국 뉴욕(메디슨 에비뉴, 24번가 등 3개 지점)과 베벌리힐스, 영국 런던(2개 지점),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위스 제네바, 홍콩 지점에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을 일제히 내걸었다. 심지어 심각한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 화랑에도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을 내걸었다. 모두 11개 화랑에 내걸린 작품은 대작 중심으로 총331점.
전세계 가고시안 화랑이 일제히 참여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Damien Hirst:The Complete Spot Paintings 1986-2011’. 말 그대로 땡땡이 그림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쯤되면 전시회라기 보다는 낯익은 작품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신년맞이 이벤트에 가깝다 하겠다.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은 사각 또는 둥근 캔버스에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의 원을 반복적으로 그려 넣은 추상화. 허스트의 여러 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이고, 경쾌해 고객들로부터 널리 사랑받는 연작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평단은 “새로운 작업도 아니고, 기왕 발표됐던 작업들을 끌어모아 전세계에서 선보이는 이런 이벤트가 과연 영향력있는 화랑이 할만한 것인가?"라고 비판어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고시안측은 별반 아랑곳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렇다 할 즐거운 이슈가 없는 작금의 미술계에서, 허스트의 상큼하고 발랄한 스팟 페인팅의 지난 15년 궤적을 결산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태도다. 특히 스팟 페인팅은 이미 이 시대 시각문화의 키워드가 됐으니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래리 가고시안(67)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은 이미 대중문화의 반열에 들었다. 광고, 자동차, 패션에도 수없이 등장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전시작 중 판매할 그림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오는 4월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고시안측은 전세계 11개 화랑을 모두 방문한 관람객에겐 허스트가 사인한 ‘땡땡이 판화’를 증정하겠다는 이벤트까지 마련했다. 이 이벤트를 통과하기 위해선 8개국(미국 유럽 홍콩까지)을 누비며 카드에 일일이 도장을 받아야 하니 여간한 미술광(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맨)이 아니고선 엄두를 내기 어려운 미션인 셈이다. 한편 ‘땡땡이 그림’의 가격은 중간 크기 작품의 경우 1억원대서부터 대작의 경우 20억원(경매기록)까지 매우 다양하다.
허스트는 뉴욕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8년 9월, 소더비와 손잡고 런던에서 자신의 대표작들을 다시 제작한 작품 223점을 판매하는 특별경매를 열기도 했다. 이틀간 열린 이 경매에서 허스트는 낙찰액 약 2200억원을 달성해 단일 작가의 경매에서 피카소(1993년 경매)가 세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염을 토했다. 그리곤 이번엔 지극히 장식적이고, 상큼한 스팟 페인팅을 총결산하는 대규모 이벤트를 연 것. "그가 하면 안되는 일이 없을 것"이란 인식이 미술계에 팽배해 있어 허스트의 이번 쇼 또한 흥행 면에선 어느정도 성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그의 작업에 대해 영국 출신의 선배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모욕감(insulting)을 느끼게 한다"고 한방 먹였다. 어쨌거나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영향력있는 인사100’에 2005, 2008년 두 차례 1위에 올랐으나 2010년들어 53위,지난해엔 64위로 급락한 데미안 허스트의 명성이 이번 블록버스터 전시로 만회될진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