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그의 작품 세계=인상주의 음악의 개척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곡가 드뷔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오션스 일레븐’ ‘트와일라잇’ ‘도쿄 소나타’의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 바로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이 삽입곡으로 쓰인 영화들이다. 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장면에서 드뷔시의 ‘달빛’은 몽환적인 선율로 빛났다. 달빛만이 머금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 검은 밤 수면위를 장식하는 빛의 몽환적인 느낌까지. 드뷔시의 ‘달빛’을 듣고 있자면 그 선율은 이내 듣는 이의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만다. 감각적인 음악을 좇았던 그의 음악적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드뷔시는 20세기 초 화려하게 전개된 프랑스 음악의 정점에 서 있던 작곡가로, 사물에서 얻은 인상을 음악적 주관으로 표현하는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정형적인 조성에서 벗어난 선율과 템포, 박자와 리듬을 구사해 ‘혁신의 작곡가’로 불리기도 한다.
드뷔시는 11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11년간 그곳에서 공부했다. 그는 파리 생활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세계에 눈 떴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열리는 집회를 통해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와 르누아르가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보고 느낀 ‘순간’을 캔버스에 옮긴 것처럼, 드뷔시 역시 음악에서 감각적인 면을 중시해 조성이나 음계, 대위법을 좀 더 자유롭게 구사하고 대담한 화성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장단조의 조성과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비기능적인 화성을 곡에 도입했다. 때문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그는 파리음악원 재학시절엔 상급반 진학 시험에 계속 떨어지며 낙제를 면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드뷔시는 규칙적인 박자 관념, 까다로운 화성법에 기능적으로 천착하기보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곡을 소화하는 자유로움을 가진 작곡가였다. 이를 통해 기존의 획일적인 작곡 스타일에서 탈피해 환상적이고 몽상적인 느낌의 신비로운 곡을 창조해 냈다.
그의 대표작은 1894년에 완성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다. 프랑스 상징파 시인인 말라르메의 시(時)를 바탕으로 한 이 곡은 ‘바그너 이후 새로운 음악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1902년에는 거의 10년 만에 완성한 그의 유일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발표했다.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이 성숙기에 달했을 때의 소산이며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줬다. 그 후 드뷔시는 수년 동안 관현악곡 ‘바다’, 피아노곡 ‘판화’ ‘영상’ 등을 작곡했다. 이어 1910년에는 피아노곡집 ‘전주곡 1집’을, 1913년에는 ‘전주곡 2집’을 발표했다. 그의 ‘전주곡 1ㆍ2집’에는 상징주의적 색채감 및 구조와 형식에 대한 새로운 실험정신이 짙게 묻어나 화성과 멜로디, 주법에 있어서 ‘낭만주의에 대한 고별’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태동’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주곡 1집의 8번곡인 ‘아마 빛 머리의 소녀’는 그가 르콩트 드 릴의 시에 나오는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다정하고 감미로운 화음의 곡이다. 그 외에 ‘평원의 바람’ ‘낙엽’ ‘불꽃’ 등의 곡들이 있다.
▶드뷔시 숨결 넘치는 무대 이어진다=프랑스 출생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적 상상력이 무대위에서 잇따라 펼쳐질 예정이다.
다가오는 4월 5일부터 5월 31일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드뷔시 시리즈’가 금호아트홀 무대에 올려진다. 드뷔시의 작품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 음악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모리스 라벨, 드뷔시가 존경했던 작곡가 장 필립 라모, 드뷔시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근대 음악의 거장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프랑스 작곡가 알베르 루셀과 프로코피예프 등의 곡들도 함께 만날 수 있어 ‘드뷔시 감성’이 풍부한 무대가 예상된다. 우선, 오는 4월 5일에는 피아니스트 에드워드 아우어가 드뷔시의 ‘판화’ 및 ‘2개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등을 연주한다. 특히 에드워드 아우어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인 문정화가 함께 꾸미는 무대도 마련된다. 이어 4월 19일에는 피아니스트 드봐이용이 드뷔시의 ‘기쁨의 섬’ ‘어린이 세계’ 및 라벨의 ‘물의 유희’ ‘거울’까지 함께 선보인다. 이어 5월 3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피아니스트 김다솔이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10일에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까지 함께 연주한다.
서울시향도 드뷔시 탄생 150주년을 맞아 올해 실내악 마지막 시리즈를 ‘드뷔시의 밤’으로 꾸민다. 스베틀린 루세브를 필두로 한 홍웨이 황, 주연선 외에 서울시향 단원들이 드뷔시의 ‘피아노 트리오 1번’ ‘현악 사중주 g단조’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등을 통해 프랑스 실내악의 묘미를 전한다. 이에 앞서 3월 1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김영호, 김주영, 이혜경 등 중견 피아니스트 8인이 꾸미는 드뷔시 탄생 150주년 기념 콘서트가 제이케이앤컴퍼니 주최로 개최될 예정이다.
▶드뷔시의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들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시향이 지난해 8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프렌치 음반에는 정명훈 예술감독의 장기인 드뷔시와 라벨 등 프랑스 레퍼토리가 담겨있다. 베를리너 차이툼은 이 음반에 대해 “드뷔시의 ‘바다’와 라벨의 ‘라 발스’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투명한 음향과 정교한 리듬이 돋보인다. 특히 ‘바다’의 연주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높은 수준이었다”고 평했다. 또 스테판 드레스 박사는 “한 걸음 한 걸음 음향을 탐색하며 나아가는 ‘바다’의 시작 부분은 이미 이 오케스트라 속에 어떤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지를 드러내 준다. 물결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악기들은 서로 어우러져 완급을 잘 조절하며 유연하면서도 광범위한 음향의 짜임을 완성해 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밖에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장기인 프랑스 피아노 곡들이 수록돼 있는 ‘백건우의 달빛: 프랑스 피아노곡 모음집’(버진클래식)도 드뷔시의 주옥 같은 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이자 백건우의 초기 음악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연주 음반이다.
또 마케도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시몬 트리프체스키(Simon Trpceski)의 드뷔시 작품집(EMI) 또한 클래식 애호가들이 추천하는 드뷔시 음반 중 하나다.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드뷔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황유진기자@hyjsound>/hyjgo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