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지만 인간은 빵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식량은 단순히 ‘먹고 사는 것’ 이상의 문제기도 하다. 나아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역사의 흐름이 뒤바뀌는 순간에는 언제나 식량이라는 ‘보이지 않는 포크’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게 ‘식량의 세계사(웅진지식하우스)’의 저자, 톰 스탠디지의 주장이다.
일례로 농업혁명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꽤나 도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농사는 애초부터 ‘자연적’인 것과 거리가 멀며, 오늘날 곡물들은 농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개량된 일종의 유전자 변형물이다. 즉 야생에 적합한 특성은 거세되고 오직 인간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길들여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농업혁명은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일 수도 있다. 몇 가지 곡물에만 의존하게 된 농민들은 영양 부족으로 수렵채집민들에 비해 체격이 작아지고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싫든 좋든 간에 농업혁명으로 삶의 양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잉여분의 식량과 저장, 관개시설의 발달은 정치적 집중화를 낳았으며 지정학적 경쟁, 산업 발전의 촉매로서 작용하기도 했다.
대항해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향신료를 찾아 나선 항해 덕분에 지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으며,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항해의 배경에는 향신료가 있었고 신대륙의 발견 탓에 ‘콜럼버스의 교환’이 이뤄졌다. 신세계에서 구세계로 넘어간 옥수수는 식량난 해소의 밀알이 되었지만 신세계에 심은 사탕수수는 식민지배와 노예제도란 비극을 발아시켰다.
이 외에도 산업혁명과 식량의 관계, 이념의 무기가 된 식량, 폭탄과 비료의 주성분인 질소 생산에 얽힌 아이러니 등,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 그 이면을 헤아려볼 여유가 없었던 흥미로운 세계사의 속살을 보여준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