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4년만에 낸 장편 ‘원더보이’
화염병을 잘 던지는 선재형첫사랑의 죽음 자책하는 희선씨
그들의 오래된 상처를 통해
정훈은 어른이 돼 가고…
이야기꾼 작가의 성장소설
또한번 세상과 소통 꿈꾸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시간이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멈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말했다면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원더보이’ 중)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소년은 마침내 눈을 뜬다.
그 사이 세상은 변했다. 트럭에서 과일을 파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다.
아버지는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남파간첩의 차량을 향해 뛰어든 애국지사가 되어있고, 소년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대통령 각하 내외분을 비롯한 각계각층 모든 국민들의 간절한 기원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깨어난다. 그런데 소년에게 전에 없던 능력이 생겼다. 남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2008년 ‘밤은 노래한다’ 이후 4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원더보이’(문학동네)에서 그려보이는 세계는 가닥이 여럿이다. 거짓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위선의 세계인 세상의 법칙과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우주의 비밀 사이를 파동처럼 끊임없이 오가며 움직인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청소년 문예지 ‘풋’에 총 4회를 연재했다가 중단한 지 3년 만에 나온 작품에서 작가는 성장소설의 틀을 좀 멀리 벌여놓는다.
열다섯 살 정훈의 성장소설이지만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그려보이려 한다.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깨어난 정훈은 독심술로 취조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동원됐다가 도망쳐 나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화염병을 잘 던진다는 선재 형, 자신 때문에 첫사랑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남장을 하고 다니는 강토 형 아니 희선 씨, 농장을 꾸려가고 있는 무공 아저씨, 해직기자 출신으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재진 아저씨 등. 정훈은 그들의 오랜 단단한 상처와 만나며 어른이 돼간다. 끊임없이 정훈이 흘리는 눈물은 바로 공감과 자기 치유의 통로로 이해된다.
소설가 김연수가 일곱 번째 장편소설 ‘원더보이’를 냈다.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작 품에서 작가는 열다섯 정훈이의 마음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건 너의 선택 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라고. |
정훈이 엄마의 부재와 아버지의 죽음을 넘어서는 길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인식과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독극물을 먹은 상자 속 고양이의 생존 여부는 관찰자가 상자를 열어보는 선택의 순간, 어느 한쪽으로 귀결되듯이 말이다. 정훈은 그의 오랜 소원인 엄마 아빠와 함께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보는 소원을 이룬다. 엄마와 아빠 대신 재진 아저씨와 희선 씨와 함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풋’에 연재할 당시 ‘연재를 시작하며’란 글을 통해, 고통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그만의 방식을 이렇게 썼다.
“멀리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사람도, 너무 힘들어 고개를 숙인 사람도 끝이 없이 텅 빈 우주공간 속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들처럼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건 멋진 여행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한번은 다른 누구를 사랑할 테니까. 우리는 다들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한 셈이니까.”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