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 냄새, 눈으로 기억되는 음식은 감각의 총합을 넘어 시간과 공간, 관계를 모두 끌어온다.
시인들에게 그런 음식은 시의 모태일지도 모를 일이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봄호에서 ‘내 시에 담긴 음식-음식을 쓰고 시를 맛보다’라는 제목의 기획특집을 실었다.
홍윤숙, 김종해, 김광규, 이건청, 유안진,안도현 등 16명의 시인이 자신에게 특별한 음식을 소재로 한 자신의 시를 소개하고 산문을 곁들였다.
유안진 시인은 ’김치, 한국인의 성깔이다’이란 시에서 김치의 무한변신을 노래한다.
"세상이 변해서 더러는 뜨악하고 서먹해져도 / 뜨건 눈물은 역시 피붙이끼리듯이 / 입맛이 소태맛일 때도 / 먹어야 눈 떠지고 허리 펴질 때도 /역시 김치이다 // 김치 한쪽 얹으면 찬밥도 더운밥 되고 / 진수성찬도 김치가 있어야 비로소 상차림이 된다"
시인은 어머니시대 식량, 연탄, 김장은 끔찍한 월동준비였다며, 가장 끔찍했던 것이 최소한 7가지 이상의 김장이었다고 회고했다."손님 끊일 날 없는 집의 철저한 상비대책이었다. 무 배추 하나로도 12가지 반찬을 만들어내야 며느리라던 어머니 시대에는, 500가지 이상이라는 한국인의 김치가 바로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고된 삶이었다. 감김치, 고구마김치, 밤대추김치까지, 모든 채소 푸성귀와 모든 과일로 김치 담가 먹던 시대가 있었고, 그 작업의 끔찍함을 너무도 잘 알아서, 전통여성-아동민속학을 30년씩 공부하고 나서도, 입맛의 최소화로 혁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김치는 어머니의 고된 삶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갱죽’이란 시를 통해 고향과 음식은 동의어임을 보여준다.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 / 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 / 햇볕을 데쳐 // 처마 낮은 집에서 / 갱죽을 쑨다 // 밥알보다 나물이 / 많아서 슬픈 죽 // 훌쩍이며 떠먹는 / 밥상 모서리 //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
시인은 “ 우리가 고향이라는 케케묵은 명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케케묵은 음식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며, 우리는 고향의 음식 앞에서 무장해제 당하기 일쑤라고 말한다.
정끝별 시인은 ’까마득한 날에’라는 시를 통해 공기와도 같은 ’밥’을 얘기한다.
"밥 하면 말문이 막히는 / 밥 하면 두 입술이 황급히 붙고 마는 / 밥 하면 순간 숨이 뚝 끊기는 / 밥들의 일촉즉발 / 밥들의 묵묵부답 // 아, 하고 벌린 입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 반쯤 담긴 밥사발의 // 저 무궁, 뜨겁다!"
시인은 "밥은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하다. 밥이라는 주어는 어떤 술어든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만큼 밥은 전체 또는 삶이다."며, "한 숟가락, 한 그릇의 밥으로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역사는 관통된다."고 말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