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농가인구가 300만명 이하로 줄었다는 연구기관의 발표가 나오자 언론에서는 즉각 ‘300만명 붕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3월 15일 발효될 경우 그 파장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물론 앞으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54조원이 풀려나갈 예정이지만, 그래도 농업이 산업으로서 유지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언론에서 ‘붕괴’라는 함축적 표현을 쓴 것 이상으로 농업인들의 마음은 실상 더 착잡하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 오래다. 최근 도시 실업이 늘어나면서 일부 귀향 움직임이 나오고 일부 억대 소득 농민들 기사가 심심찮지만 농업 일반의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정작 필요한 것은 부농 아닌 대다수 평범한 농민들에게 용기와 사기를 올려주는 일이다. 이는 농촌의 어려운 상황과 농가인구 감소의 중대성을 전하는 것 이상으로 언론이 앞장서 해주어야 할 시대적 사명 아닐까. 우선 국민의 94%를 차지하는 비농가들이 지나치기 쉬운 농업ㆍ농촌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300만명도 안 되는 우리 농업인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 직ㆍ간접적인 혜택은 엄청나다. 농업은 우리 국민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논과 밭에서 생산되는 것은 농산물만이 아니다. 논과 밭이 우리의 환경을 유지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평소 이를 느끼지 못하고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경제가치로 환산, 논이 연간 56조5000억원, 밭이 11조3000억원으로 무려 67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농축산물 연간 생산액의 2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를 좀 더 세분하면 홍수 조절 51조5000억원, 수자원 함양 1조8000억원, 대기 정화 9조9000억원, 기후 순화 1조8000억원, 수질 정화 3000억원, 토양 보전 2조5000억원 등으로 우리 국토의 보전과 환경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날로 극심해지는 환경 오염과 폭우ㆍ폭설ㆍ혹한 등 이상기후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농업이 갖고 있는 이러한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국토 보전과 산업시설 보호를 위해서도 절대 필요하다. 더구나 농업ㆍ농촌이 지니고 있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 보전하는 무형적 가치까지 감안한다면 농업ㆍ농촌의 지킴이인 농민들은 평가받아 당연하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 제고와 국민경제의 활력 요소인 한류 열풍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하려면 우리 전통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농촌사회 유지를 통한 전통문화의 보전, 나아가 국악의 발전이 앞으로 한류 이후 시대를 책임질 것이라는 전망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윤영달 크라운제과 회장은 국악 마니아다. 그 자신 단소를 불면서 대금과 거문고, 가야금 등의 젊은 고수들을 배양하는 데 힘쓰는 이유는 지금 세계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K팝 시대 이후를 생각해서다. 그게 바로 국악이고, 이는 또 우리 농촌의 사물놀이 등 전통문화가 뿌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뒤늦게 출발해 산업화에 성공한, 세계에서 아주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국민이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농민의 자식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비록 우리 농업과 농촌이 산업화의 그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도 따뜻한 애정을 갖고 있는 국민이 있는 한 농업과 농촌이 붕괴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최근 귀향 농가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 현상이다. 도시 취업난을 완화하고 농촌 경영을 근대화하기 위해서도 젊은이들의 귀향을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 한ㆍ미 FTA 발효가 농업에 지장을 주기보다 지난해 억대 소득 부농 1만6000명과 10억원 이상 부농 164명을 생각하면 노력하기 나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