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해적’기지 발언 분노
형사 고소 절차까지 밟아
개인 감정·견해의 표현
국가가 잘잘못 가리는게 맞나
이영조 전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사용한 ‘Revolt’ ‘Rebellion’. 모두 국제적으로 좌ㆍ우파 관계없이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중립적 의미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Rebel이라는 말도 영웅적인 ‘반군’ ‘저항군’의 의미로 영화 ‘스타워즈’ 같은 곳에서 잘 쓰이고 있다. 오래된 예로는 유대인들도 2000년 전 로마제국에 대한 자신들의 항쟁을 ‘Jewish Revolt’라고 자랑스럽게 부른다. 5ㆍ18이나 최근 중동의 민주화운동을 거론하는 외국 언론이나 학자들의 표현에도 ‘Rebellion’이라는 표현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 위원장의 의도나 다른 행적 때문에 일부러 ‘반란’이나 ‘폭동’이라고 부정적으로 번역했는지는 모르나 언제든 ‘항쟁’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단어 선택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필자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을 당시의 피비린내가 소독된 무미건조함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고 ‘광주항쟁’이나 ‘광주학살’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폭동’이라고 폄하했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정부에서 정해놓은 이름을 쓰는 것이 맞겠지만 그것도 나의 선택이다.
사실 국가가 사물의 이름을 정하려는 것 자체가 사상통제이다. 국가가 자신들의 공문서에 자장면이라고 쓰건 말건 국민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짜장면, 북어국 소리도 못하는 언어관치를 더 보편화하자면, 특정 언어선택으로 전달하려는 감정과 견해의 공유가 차단되고 그리하여 결국 사상이 통제된다. 바로 이 언어관치의 토양하에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할 때는 공손하게 해야 한다는 비민주적 논리가 자라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원리는 국가는 모든 강제력을 독점하고 그 강제력은 적법절차를 통해서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국민의 행복여탈권을 쥐고 있으며, 국가에 의해 불행해졌다고 믿는 사람이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담아 말할 수 없다면 그는 ‘감정감옥’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해군이 ‘해적’기지라는 말을 형사 고소한 사례는 언어관치의 극단이다. 물론 ‘주둔해군 때문에 강정주민들의 생계와 안정이 위협받는다는 의미’였다고 하더라도 강정 주둔도 해군 작전의 일환이었으니 천안함 유가족들이나 해군사병들의 마음은 분노 때문이든 회한 때문이든 착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적’에 실린 감정표현이 과하다면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과 견해의 표현에 국가가 나서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맞는가이다. 또 나아가 형사처벌한다는 것이 맞는가이다.
모욕죄ㆍ명예훼손죄 형사처벌제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혐오발언 규제가 없어서, 다른 한편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사소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층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혐오발언 규제는 만들면 되고 프라이버시 보호는 민사소송으로도 가능하다. 이번 형사고소로 위축될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또 이 고소 때문에 ‘해적’의 의미를 국어사전이나 문헌에서 뒤져보고 있을 검사들과 판사들에게 지급될 국민세금을 생각하면 아무리 따져보아도 모욕죄ㆍ명예훼손죄는 폐지하는 것이 수지가 맞는다. 2005~2007년 기간 동안에 전 세계에서 모욕죄ㆍ명예훼손죄 등으로 실형을 산 사람들의 3분의 1이 한국인이었음을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