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자력 안전관리에 상상할 수도 없는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이 12분 동안 끊기고, 즉시 대체 가동돼야 할 비상 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전원 공급 중단 상태가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쉬쉬하는 바람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물론 한국수력원자력조차 한 달이 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우연히 사고 사실을 알게 된 한 지방의회 의원이 경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보고가 이뤄졌다고 한다. 원전 안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수준이 이런 정도라니 불안감을 넘어 배신감이다.
그동안 정부와 한수원은 우리 원전의 안전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태라고 큰소리를 쳐왔다. 특히 냉각장치에 전원이 끊겨도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작동하며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다는 말에 국민들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말도 믿지 못하게 됐다.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원전은 설 자리가 없다. 원전 안전은 언제나 투명하게 공개, 한 치의 불안감도 없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쓰나미가 1차 원인이었지만 투명하지 못한 후속 조치가 화를 더 키웠고 세계를 방사능 공포에 떨게 했다.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유일한 미래 에너지원이다. 풍력ㆍ수력ㆍ조력ㆍ태양열 등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은 경제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선 원전 의존도를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에 대한 경계심과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원전의 안전은 우리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이번 사고는 원자력 안전 불감증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안전 시스템 전반을 꼼꼼히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결국 이번 사고도 원자로 정비 과정에서 직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것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다시 손질하고,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보고하는 총체적 안전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이번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 내용을 빠짐 없이 공개, 원전 안전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