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술경쟁력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원천기술 부족으로 기술무역적자폭이 커지는 것이 우선 걱정이다. IT(정보기술) 분야에서만도 연간 외국에 지급하는 로열티가 수조원을 넘는다. 우리 스스로 IT강국을 외치지만 기술경쟁력 지표인 기술무역수지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최하위다. 기술무역으로 미국은 우리에게 30배, 일본은 8배를 거꾸로 거둬간다. ITㆍ자동차ㆍ전자 등 효자 부문도 기술종속에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이공계 기피현상이 문제다. 97년 외환위기가 그 출발점으로, 경기침체가 극심해지면서 살인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현실화하자 대입시마저 적성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우선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골 깊은 불황에 기업들이 우선 감원대상으로 연구기술진을 택한 것이 1차적 패착이었다면, 이를 막지 못한 정부의 안이한 정책운용이 사태를 키운 꼴이다.
이런 현상이 10년을 훨씬 넘도록 지속되니 원천기술 빈약은 뻔한 결과다. 올해 초 서울대 수시에서 컴퓨터공학과에 최연소 합격한 영재가 결국 연세대 치대로 진로를 튼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를 보면 과학ㆍ영재고 학생이 대학생, 대학원생, 이공계 종사자로 성장할수록 이공계 홀대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산산이 깨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정도나마 우리 기술이 경쟁력을 갖춘 것도 70년대의 기술보국 기치와 80년대 대덕단지 조성 등 정부의 전폭적인 기술지원정책의 산물이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면 삼성전자와 코오롱 사태처럼 특허전쟁에서 판판이 당하고 말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성적인 눈덩이 대일 무역역조 역시 핵심 기계부품과 신소재 분야에서 일본에 지배당한 결과 아닌가.
우선 기술인들의 자긍심 회복이 급선무다. 의사ㆍ변호사 등 여타 전문직에 비해 낮은 처우가 문제인 것도 지난 얘기일 뿐 박사급 연구원이 대기업 학사에 밀리는 현실이다. 기술진에 대한 처우개선부터 과감하게 하고 특허 등 기술 보유 정도에 따라 병역특례 등 특전도 부여하기 바란다. 중국의 국가지도층 주류가 칭화대 등 이공계 출신이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기업들도 GE 등 선진기업처럼 맞춤형 인재 양성 등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늦게나마 대기업들이 서울 근교에 대규모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우수인력 확보에 힘 쏟는다니 다행이다. 더 나서지 않으면 머지않아 땅 치고 후회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