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와 내년의 우리 경제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책연구기관마저 비관적인 경제전망치를 내놓기에 이르렀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에 따른 경기침체가 우려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골 깊다는 의미다. KDI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당초 3.6%에서 2.5%로 하향조정했다. 또 내년 성장률도 4.1%에서 3.4%로 크게 낮춰잡았다.
저성장 조짐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있어왔다. 2분기에 전분기 대비 0.3%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도 잘해야 0%, 아니면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고됐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유럽권과의 금융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재정위기 여파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안이한 판단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문제는 불황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KDI가 그나마 낮춰잡았다고는 하나 내년 경제성장률 3.6%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민간연구소들은 이보다 훨씬 아래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진원지인 유럽은 물론 미국과 중국마저 경기침체에 빠져들면서 우리의 거대시장이 하나같이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지나친 대외의존 구조로 인해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가 얼어붙고 기업의 투자부진도 가속화한다.
더 심각한 것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것인 데다 우리 경제구조가 이미 일본식 L자형 저성장 모형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경제 성숙 등으로 낮은 성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KDI의 지적이 이를 의미한다. 결국은 성장동력의 문제다. 이는 기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하고, 그러자면 더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랍시고 기업을 옥죄기만 한다.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는 당장 유례 없는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경제난에 허덕이다 임기를 다 소모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점을 우선 대선후보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저마다 ‘일자리 대통령’을 외치지만 기업을 타박하는 이상 일자리 창출은 그저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도 서민 안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무를 짓밟고 과실을 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면 위기부터 극복한 뒤 순서에 맞게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