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브라질 등 개도국 성패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이 판가름
安風은 기존정치 대한 불신 방증
권력투쟁 넘어선 새 리더십 필요
비슷한 역사적 배경이나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나라는 흥하고, 어떤 나라는 쇠락하는가. 미국과 멕시코나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18세기에만 하더라도 모두 유럽의 식민지였고 경제상황도 비슷했다. 1800년대 말에는 아르헨티나가 미국보다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2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돼 있다. 한국과 북한도 1945년 해방 직후에만 해도 상황이 비슷했고 1960년대엔 북한이 경제력에서 앞섰지만, 지금은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대런 애시모글루 교수와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라는 최근 저서에서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바로 ‘정치’에 있다고 갈파한다. 정치가 당대의 국가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끌어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난다고 두 교수는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민주적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정치권이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 제도를 만들고 대중들은 새로운 기회를 향유함으로써 국가가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멕시코나 아르헨티나는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권력을 이어받은 집권 엘리트의 욕구를 채우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결국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리스턴대 교수는 미국의 정치적 변화가 경제적 불평등을 얼마나 확대 또는 축소해왔는지를 실증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는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라는 책에서 전후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추적하면서 “정치적ㆍ경제적 변화의 시기를 살펴보면 경제가 아닌 정치가 변화를 주도했다”고 결론내렸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에도 정치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여야의 후보가 확정된 가운데 ‘국민멘토’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면서 흥미가 배가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 정치가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고, 나아가 변화를 주도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정치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안 교수에게 대중이 강한 희망을 거는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혐오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정치가 변화를 이끌지는 못하더라도 경제의 발목이라도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기존 정치권은 말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20~30년 전의 권력투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상황도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고도의 압축성장과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았지만, 이제 3%대 성장도 어려운 구조적 저성장기에 직면해 있다. 정치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근본적으로 변화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고도성장의 미몽을 쫓거나 향수에 의존하려는 리더십은 더 심한 좌절감을 낳을 뿐이다.
대외환경은 한국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외교갈등을 해소하고, 북한과의 대치상황을 평화국면으로 되돌려놓을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주변국과의 갈등이나 안보 문제를 집권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한국의 시계는 계속 거꾸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한국의 정치도 새롭게 디자인돼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기업 경영방식과 도시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듯이 한국 정치도 새 디자인이 필요하다. 권력투쟁과 권위주의, 경제성장, 안보 만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대중과 호흡하면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에게도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그 문턱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