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마침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20일에는 현충원을 참배, 공개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보일 듯 말 듯한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안 원장이 대선 90일을 앞두고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빠듯하긴 해도 그의 정치적 역량과 도덕성을 검증할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의사 출신 사업가이자 대학교수인 그가 유력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른 것은 정치 쇄신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의 반영이다. 안 원장이 출마선언 첫 대목부터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뀐다”고 강조한 것도 그 같은 열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 진정성과 각오도 느껴진다. 그의 현실정치 실험과 대권도전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우리 정치가 한 걸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대선 출마는 큰 의미와 함께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 원장은 기성 정치와 다른 새 정치로 대선 판을 흔들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로, 헐뜯고 증오하는 정치가 아니라 통합과 화합의 정치로, 흑색선전의 구태를 청산하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안 원장이 장외에서도 높은 인기와 지지를 누렸던 것은 그런 정치를 해보라는 국민들의 격려였던 것이다. 그는 정치권에 빚진 것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지지와 격려를 보낸 국민들에게는 큰 빚을 졌다. 그 빚을 갚는 것은 그가 올바른 정치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최대 관심은 야권후보 단일화 여부다. 그는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자제한 채 그 전제조건으로 정치권 혁신과 국민의 동의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건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계량하기는 쉽지 않다. 그 판단과 선택은 전적으로 안 원장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다만 단일화 결정 과정에서의 얄팍한 정치공학적 계산은 절대 금물이다. 정치적 신념도 철학도 없이 그저 권력의 뒤꽁무니를 좇아 단일화에 임한다면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기성 정치와 하나 다를 게 없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리라 믿는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깨끗이 판을 접고 학교로 돌아가는 게 우리 사회에 훨씬 도움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