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아버지의 후광 논란
문재인, 노무현 아류라는 편견
과거가 만든 편견, 현재를 왜곡
이젠 내일의 변화 읽어야 할때
곧 명절이다. 보름달 앞에서 수확을 얘기하고, 잘잘못을 돌아본다. 차례상에 오르는 것은 탕과 전, 햅쌀 메와 삭힌 홍어만이 아니다. 회한, 기쁨, 고단한 삶에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대한 기대감도 올려진다. 명절의 모든 재료엔 ‘내일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흔히 추석 동창회가 열린다. 동창회엔 옛 얘기, 요즘 얘기가 섞여 있다. 그간 만남이 뜸했으니 안부를 물은 후에 얘깃거리는 빈곤하다. 대선도 한 소재 할 것이다. 한쪽에선 유쾌하지 않은 표정도 보인다. 애들이 학교에 다니는 가장인데, 몇몇 친구가 애들처럼 “너 많이 컸네, 예전엔 만날 맞더니…”라며 내뱉은 비아냥 섞인 농담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괜한 코흘리개 추억 들추기가 싫다는 이유로 명절 동창회에 불참하는 귀성객도 적지 않다.
명절 귀향 때엔 이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과거로의 여행이 교차한다. 과거는 누구에게나 뭉클하면서도 부끄러운 구석이 있다. 지금 내 모습의 원인이자 달라질 내일의 원동력이지만, 시간차가 빚는 편견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다.
당나라 고승 마조선사의 성장기, 할아버지 아버지는 곡식 중에 겨를 골라내는 허드렛일꾼이었다. 그는 회양대사를 만나 성불한 인물이다. 회양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좌선을 하는가?” 마조가 대답했다. “부처님이 되려고요.” 회양은 갑자기 기왓장을 갈기 시작했고, 마조가 이유를 묻자 “거울을 만들려 한다”고 답한다. 마조의 비웃음에 회양은 “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을 만들 수 없듯이 좌선으로 부처가 될 리 없네”라고 답하고는 “수레를 가게 하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라는 되물음으로 구도(求道)에 임하는 마조의 자세를 변화시켰다고 한다. 마조는 ‘꾸미지 말고, 좋은 것만 좋아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민중 체감도 높은 설교로 당대 최고승 반열에 오른다.
마조선사가 귀향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의 정체를 확인한 뒤 이내 실망하며 “대단하신 스님인가 했더니 허드렛일꾼 마씨네 꼬마 녀석이네”라고 비아냥한다. 그는 이런 푸대접에 “고향에서는 도를 이룰 수 없네. 개울가 늙은 저 할미는 아직도 내 옛 이름을 부르는구나”라는 노래를 남겼다. 과거의 편견으로 오늘을 잘못 평가하는 세태를 한탄한 것이다.
문호 톨스토이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젊은 날 낙제생으로 동료들의 놀림감이었고, ‘생각하는 사람’의 로댕은 꼴찌로 바닥을 기다가 예술학교 입학을 세 번이나 거부당했다. 아인슈타인은 네 살 때까지 말을 못해 집안의 걱정거리였고 독일에서 낙제한 뒤 스위스 대학에서도 특허사무원으로 밀려났다. ‘든 것도 없으면서 성질 자랑으로 저 모양이 됐다’고 재단하기 딱 좋은 20대 중반까지의 삶이었다.
하지만 톨스토이, 로댕, 아인슈타인 모두 어려운 과거가 자양분이 돼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킴으로써 인류에 큰 족적을 남긴다. 이제 그들을 “바보, 멍청이, 똥개”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박근혜가 아버지로 인해 본색 및 후광 논란에 휩싸여 있다. 노무현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인 문재인이 노무현 아류라는 편견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다. 안철수는 IT기업 경영만으로 국정을 이끌겠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유신의 딸이라던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한다. 문재인은 탈계파와 참여정부 정책 일부의 폐기를 언급한다. 박정희가 집권 당시 정치 경력 ‘0’였고, 정치 9단 YS의 국정 평가는 늘 하위권이다. 정치 경력은 중요치 않다는 게 안철수의 입장이다.
과거가 만든 편견은 현재를 왜곡하고 미래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 추석은 미래를 향해 기도하는 비나리이다. 어제의 감옥에 갇히기보다는 내일의 변화를 읽을 때가 더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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