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고장에다 비리로 얼룩졌던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이번에는 마약 파문에 휩쓸렸다. 이 원전의 재난안전팀 직원 2명이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할 이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사무실에서까지 히로뽕을 취했다면 이는 단연 해외 토픽감이다. 더구나 마약 조달경로가 고리원자력 주변을 무대로 하는 조직폭력배였다면 결코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수사당국은 때와 장소, 무엇보다 유통경로가 심상찮다는 점을 주목하고 철저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 원전이야말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곳으로 내부 고장은 물론이고 화재나 테러 등 그 어떤 안전사고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사고를 친 이들은 원전 화재 진압 등에 업무가 한정돼 있는 소방요원들로 원전 안전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해명한 고리원전 측의 한가로운 태도다.
물론 고리원전은 국내 원자력발전의 효시로서 그 역할과 공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컸다. 그러나 잦은 고장에다 내부 비리 등 잇따른 악재로 그동안 쌓아온 안전과 신뢰의 바탕이 뿌리째 흔들리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지난 2월에는 발전기 고장으로 전원 공급이 끊어져 정전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를 은폐하고 국민을 속이다 뒤늦게 외부에 의해 우연히 발각됐다. 60여명의 직원이 하나같이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 그저 놀랍고 두려울 따름이었다.
이로 인한 근신기간에 수십명의 직원이 납품 비리를 저지르다 들통 났다. 내다버린 낡은 부품을 다시 페인트칠해 정품인 양 납품하도록 하고 하청업체로부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무더기로 구속되는 사태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원전 고장 원인으로 부품 결함을 맨 먼저 꼽는다. 다음이 정비 실수나 원전연료 손상 등이라는 것이다. 원전들이 올 들어서만도 5차례나 크고 작은 고장을 일으킨 내력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렇잖아도 고리원전 1호기는 정전 은폐 사고 이후 가동중단 5개월 만인 지난달 초에 조심스럽게 재가동 중인 상황이다. 민간 전문가들이 안전성을 검사한 결과 이상 없다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나 지역 민심은 설계수명 30년이 넘어 노후됐다며 가동중단과 폐쇄까지 주장하고 있다. 더 긴장하고 정신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에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불과 얼마 전 내놓은 혁신방안을 재점검하고 바닥 밑으로 가라앉은 신뢰를 어떻게 하면 회복할지 다시 머리를 싸매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