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이십니까?” “아니므니다.”
“진보이십니까?” “아니므니다.”
“도대체 정치인으로서 철학이 뭡니까?”
“철학 없으므니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코너의 ‘갸루상’을 정치판에 빗대 재구성해 봤다.
평생 보수진영에 섰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교수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질 때만 해도 ‘아직 무소속이니까’라며 고개를 끄덕일만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도 한때 안 후보의 멘토였으니까.
그런데 윤 전 장관의 최종 선택은 민주통합당이다. 도데체 그의 정체(政體)는 뭘까? 그가 2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말이 답이 아닌가 여겨진다. “위치 따라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사실 윤 전 장관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에서 ‘갸루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7대 대선에서 중도진보를 부르짖었던 정동영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좌파로 변신한 듯하다. 보수권 대표인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경제민주화의 기치 아래 재벌개혁 등 살벌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 대선 캠프들의 최대 과제는 ‘국민통합’ ‘중도포용’ 인사들의 영입이라고 한다.
상대편 표를 뺏어 와야 승리를 하는 게 선거이니, 어느 한쪽만 고집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표’를 위해 기존의 철학과 모순되는 생각까지 받아들이는 ‘척’ 하는 것은 대국민 기만극이다. 수용하려면 진심을 다해 기존의 철학과 화학적 융합을 이뤄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이 왜 변했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먼저다.
일례로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지지했다가 당선 후 ‘표 좀 얻어보자고 했던 공약’이라며 말을 바꿨다. 행정수도 이전이 진행됐기에 다행이지, 만약 좌절됐다면 그 이유로 표를 줬던 유권자로서는 사기를 당할 뻔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 예외 없이 ‘욕’을 먹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공약 불이행이다. 그것도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 선택에 따른 불이행이다. 12월에 가려질 18대 대통령마저 그 전철을 밟아 ‘달라도 너~무 다르다’면 국민들은 ‘바꿔 달라’며 이렇게 이구동성 외칠지 모른다. “브라우니,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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